산만하고 알록달록하다…. 첫인상은 그러했다. 그러나 들으면 들을수록 달콤한 매력이 반짝거린다. DJ 안과장(이하 안과장)의 음악에 양해훈 감독이 끌린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양해훈 감독이 작업한 안과장의 <왜 내 여자랑> 뮤직비디오는 장편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보다 옴니버스영화 <황금시대>에 포함된 단편 <시트콤>의 색깔에 더 가깝다.
양해훈 2007년 카페 빵이 2주년을 맞이하면서 기념행사로 독립영화감독이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를 한편씩 만드는 프로젝트기 제안되었다. 나랑 최진성 감독, 장건재 감독과 DJ 안과장, 흐른, 그림자 궁전이 짝지워졌다. 난 이분이랑 작업하고 싶다, 라고 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고… 선택권이 없었다. (웃음) 그때 처음 안과장의 노래를 죽 들어보는데, <왜 내 여자랑>이 귀에 쏙 박혔다.
DJ 안과장 <왜 내 여자랑>은 사실 말도 안되는 노래다. 기본적인 형식이나 흐름이 막 툭툭 끊기고, 약간 장난처럼 즉석에서 만든 노래였다.
양해훈 내가 그 노래를 골랐을 때 좀 싫었을 것 같다. (웃음)
DJ 안과장 그나저나 뮤직비디오 때문에 처음 만난 자리에서 양해훈 감독이 시안을 보여주는데 깜짝 놀랐다. (웃음) 이만한 종이에 그래프도 아닌 것이, 뭔가 점과 선이 막 찍혀 있었다. 내 노래를 듣고 머릿속에서 떠오른 걸 그렸다고 하는데….
양해훈 음악하는 사람에게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이런 걸 보여주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는데…. (웃음) 노래에 서사가 들어 있으니까, 그걸 죽 따라가면서 리드미컬하게 화면을 빵빵 터뜨리면 재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뮤직비디오 세 편이 한꺼번에 처음 상영되던 날, 대신 안과장의 아이디어로 재미있는 이벤트를 했다. 스탭 중 악기를 제대로 다뤄본 사람이 거의 없었다. <바이엘> 하권 간신히 뗀 그런 친구들을 안과장이 다 가르치고 무대에 올렸다.
DJ 안과장 홍대 합주실에서 한 30분 연습했나? 그래도 공연하고 나니까 그림자 궁전의 9(‘9와 숫자들’의 리더다)가 “형,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 거예요. 우리도 할걸”이라며 아쉬워하더라.
양해훈 <무한도전> ‘강변가요제’ 느낌이었다. 물론 안과장이 타이거JK고 우리가 좀 모자란 멤버들…. (웃음) 그래도 스탭 모두 그 공연 때문에 무척 즐거워했다.
DJ 안과장 나중에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가 개봉했을 때 깜짝 놀랐다. 내가 원래 안 그러는데 양 감독에게 영화 죽인다고 문자를 세개나 보냈을 정도다. (웃음) 이 사람, 되게 탄탄한 사람이구나. 뭘 해도 되겠다 그런 느낌이었다. 낙원상가 갈 때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무슨 감독인지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되는 대로 보고, 가끔 홍대 상상마당 가서 시간 맞는 단편 보고 그 정도였는데,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를 보고는 ‘이 사람이 겉으로는 허허거려도 그동안 쌓아온 게 있구나’ 싶었다.
양해훈 난 안과장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노래 자체는 달콤하고 재미있지만 고음으로 올라갈 때, 분명 스틸 하트 같은 밴드 음악을 경험한 세대라고 직감했다. (웃음) 내 나이 또래의, 약간 낀 세대의 느낌? 말랑하고 쿨한 주류 밴드가 있고 스틸 하트로 통칭되는 록 발라드 세대가 있는데 안과장은 그 두 세대를 모두 넘나들 수 있는 것 같다. 같은 가격으로 김밥, 떡볶이 다 먹을 수 있는 ‘김밥천국’ 느낌이라 좋았다. 그나저나 궁금한 게 있다. 전혀 다른 전공을 공부했으면서 어떻게 음악을 하게 됐나.
DJ 안과장 전형적인 단순무식 코스를 밟았다. 남중, 남고, 공대, 군대. 미적분으로 시작해서 미적분으로 끝난 내 청춘이다. (웃음) 생각해보면 수학자이자 철학자 피타고라스가 서양 음계를 만들었다. 악보를 보면 죄다 숫자와 알파벳이다. 그게 컴퓨터 안에서 프로그래밍하면 전부 이진법으로 표현 가능하다. 그래서 공대를 다니면서도 음악과 그리 멀지 않았던 것 같다. 양해훈 감독이 처음 뮤직비디오 얘기할 때 점을 찍은 그림도 그래서 그래프처럼 이해했던 것 같다. (웃음)
양해훈 얼마 전에 나온 1집 <<미인은 롸커를 좋아해>>의 반응은 어떤가.
DJ 안과장 장난 아니게 안 팔린다. (웃음)
양해훈 유통문제인 건가?
DJ 안과장 요즘은 아이돌도 힘든데 인디 뮤지션은 말할 것도 없다. 일주일에 한두장 팔리면 감사한 지경이다. 얼마 전에도 카페 빵 사장님한테 호소했더니, “아직도 앨범 팔리는 걸 기대하냐. 마음을 비워라”라고 하더라. (웃음)
양해훈 아, 너무 공감가는 얘기다….
DJ 안과장 어쩐지 공연을 하면 할수록 팬카페 회원도 줄어드는 것 같고…. (웃음)
양해훈 아니다. 안과장 라이브 보면 진짜 장난 아니다. 난 사실 음악하는 분들이 너무 부럽다. 음악은 즉각적이고 이래저래 설명할 필요가 없는 장르잖아. 그리고 또… 미인한테 인기도 많고! 영화 만들면 만날 수염난 사람들이랑 술만 마시고…. (웃음)
DJ 안과장 하하하, 안 그래도 그런 얘기 하는 사람들 많다. 나이 든 로커의 노래가 왜 점점 별로가 되냐면 욕망이 없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점도 수긍하지만, 그래도 지속적으로 꾸준히 하려면 그거 말고도 음악하는 이유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양해훈 그게 뭘까.
DJ 안과장 예를 들면, 내가 무인도에 떨어진다. 아무도 없고 대신 장비는 다 있다. 그럴 때에도 혼자 음악을 만든다는 자세가 있어야 죽을 때까지 음악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뭔가 대단히 새로운 작업을 하는 게 아니고, 어차피 예전에 들었던 음악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남과 좀 다른 것 같은 음악을, 내가 순간적으로 느낀 걸 극대화할 때의 쾌감이 있다. 발표를 안 해도 되는 그런 즐거움.
양해훈 창작의 즐거움?
DJ 안과장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양해훈 난 영화에 대해 의도적으로 둔해지려고 하는 게 있다. 영화 아니며 죽으리라, 이런 거 안 하려고. 자살하면 안되니까. 영화를 못 만들면 목수를 할 거다. 이렇게 마음먹는 게 스스로 건강해지는 것 같다.
DJ 안과장 새 장편 시나리오를 다 썼다고 들었는데.
양해훈 원래는 영화에서 음악을 쓰는 것에 자신이 없었다. 이번 시나리오 작업하면서 처음으로 ‘이런 느낌의 음악이 반드시 들어가야 함’이라고 상정하면서 썼다. 음악 들으며 시나리오를 쓰면 자기 감정에 너무 유치하게 도취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작업해보니 분명 다른 이미지가 나오는 것 같다. 이제 좀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표작>
양해훈 <친애하는 로제타>(2007)<저수지에서 건진 치타>(2007)<황금시대>(2009)
DJ 안과장 <미인은 롸커를 좋아해>(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