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의 탐독: 정성일의 한국영화 비평활극> ,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정성일 정우열의 영화편애>
정성일 지음 바다출판사 펴냄
정성일의 첫 평론집 두 권이 나왔다. 세상에, 처음이라고? 믿을 수 없겠지만 그렇다. 한국영화를 말하는 자리에 그의 언어, 시선, 흥분, 절망은 늘 함께했기에 어쩌면 우리는 굳이 그의 책을 기다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열권도 넘는 그의 책을 보았다고 착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를 사용할 뿐, 영화 사랑하는 법을 하찮게 여기는 책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마침내 출간된 그의 책들을 말 그대로 ‘만져볼 때’ 마음이 벅차다. 그는 “글을 쓰는 것은 생활의 리듬”이지만 “책을 내는 것은 삶 속에서 사건”이라며 책머리에 두려움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난 10년간 각종 매체에 발표한 글을 모아 두 권의 책으로 묶었다. 하나는 자신이 직접 선별한 한국영화에 대한 글로 엮은 <필사의 탐독: 정성일의 한국영화 비평활극>이고, 다른 하나는 만화가 정우열, 아니 고독한 영화광 올드독이 그의 글에 화답하는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정성일 정우열의 영화편애>다. 궁금하다. 무엇이 그를 결단하도록 이끌었을까.
온전히, 오로지 그것은 우정 때문이라는 인상이 놀랍다. 기다림 끝에 자신의 첫 번째 장편영화를 찍고, 망설임 끝에 비로소 비평집을 내면서, 그러니까 그 긴 시간을 지나 그가 결국 돌아온 자리가 우정이라니. 이 책들은 그간의 영화적 행로를 반추하고 총체화한 결과물이 아닌, 무언가 다시 시작하려는 선언처럼 보인다. 두 권의 책을 나란히 놓고, 그 엄청난 제목과 어딘지 신화적인 표지의 얼굴들(<생활의 발견>의 김상경과 <알파빌>의 안나 카리나!)을 들여다보는데, 문득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적 울림이 스쳐간다. 그 어떤 이론적 깨달음도 아닌, 저 밑바닥, 영화라는 세계에 대한 근원적 우정으로 버티겠다는 따뜻하고 절실한 선언.
우리는 정성일의 비평이 끝없이 이어지는 난해한 지식으로 독자를 주눅 들게 한다고 불평하곤 하지만 그건 오해다. 거기, 우리가 모르는 지식의 현란한 나열이 아닌, 행간에 휘몰아치는 영화를 향한 마음의 밀도가 우리를 보잘것없게 만든다. 대상에 대한 인간의 마음은 도대체 얼마나 더 깊어질 수 있는가. 그의 글은 그 마음의 한계를 매번 갱신하며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무언가에 대한 마음은 지식의 목록과 달라서 아무리 노력해도 다다를 수 없는 지점이 있다고 믿는 내게 그 사실은 늘 좌절감을 안긴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지독함이 배움의 시간이 올 때까지 영화에 대한 사랑만 믿고 기다려온 자의 외로움이라는 사실에 용기를 얻는다. 영화는 산업도, 상품도 아니라, 더는 어찌 감당해야 할지 모를 우리들의 외로움이라는 것, 그 외로움을 어떻게든 냉소하지 않으려는 행위라는 것을 그의 글은 가르쳐준다. 그러니 이 책들을 어느 평론가의 끈질긴 영화지도로 읽든, 소심한 영화친구들에게 보내는 다정한 연애편지로 읽든 상관없다. 다만, 영화 밖에서, 그러니까 세상의 자리에서 영화를 넘보는 요란한 구경꾼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글이 우리를 힘겹게 인도하는 길의 윤리, 즉 필사적으로 영화 안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 다시 필사적으로 세상의 문을 찾아야 한다는 호소에 대해. 삶을 사는 것처럼 영화를 살고, 영화를 사는 것처럼 삶을 사는 것에 대해. 홀로 감내할 일이며, 애초 성공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때, 나와 똑같이 실패를 겪고도 다시 그 길을 택할 용감한 친구들에게 위로를 구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는 안도한다. 이제, 우리의 안도를 고백할 차례다. 당신의 글이 영화(비평)만이 구할 수 있는 어느 세계를 여전히 온 힘을 다해 방어하고 있으니 정말로 얼마나 다행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