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땅의 주인은 ‘신도 삼켜버릴’ 굶주림이다. 그곳에는 눈동자가 아주 작은 늑대가 산다.‘얼음 창문 속 아마존 정글’이라고 하는, 투명한 얼음으로 덮인 바이칼 호에는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생김새의 존재가 숨쉰다. 뱀이 ‘사악함’을 상징하는 대신 ‘영민함’을 뜻하는 곳, 너의 시베리아.
미국에서 변호사이자, 작가이자, 아이 둘의 아버지로 살아가던 리처드 와이릭은 일 때문에 시베리아를 방문했다가 셋째 아이를 입양하기로 마음먹었다. 결국 아멜리아를 만나 딸로 키우게 되었는데, 입양에 이르기까지 밟은 시베리아에 대한 짧은 글을 모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본 시베리아, 가장 척박한 유배지 시베리아, 얼어붙은 설화의 땅 시베리아가 그렇게 하나가 된다. 동시에 가장 싸늘하게 얼어붙은 희망을 가감없이 전한다. 1991년 가을, 현물경제가 박살나면서 사람들이 봉급을 받으려고 줄을 섰다가 딜도 주머니를 받아든 이야기만 해도 그렇다. 현실의 척박함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하고 알록달록하며 화려한 딜도(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마저)에 분노해버린 사람들. 아멜리아와의 만남에 대한 추억도 있다. 이 책의 원제는 ‘시베리아에서 쓴 100개의 엽서’다. 낯선 언어로 된 지명과 인명이 불러일으키는 아득함에 매혹되버리는 사람에게, 아름다운 독서체험을 주는 책이다. 마치 당신만을 위해 쓴, 머나먼 땅에서 온 엽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