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혹은 여기 사는 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모든 일은 영구네 통닭집 주인과 어느 여자 미술학도와 오피스텔 302호에 살고 있는 정체 모를 남자의 생활 반경 안에서 벌어졌다. 통닭집을 운영하는 중년의 남자에게는 아내와 고등학생인 딸이 있다. 아내도 그렇고 딸도 그렇고 그가 통닭집을 하는 걸 달갑게 여기진 않는다. 그래도 딸의 해외연수 학자금을 위해서 남자가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은 닭을 튀기고 배달을 나서는 일뿐이다. 302호, 그러니까 일명 ‘깔깔이’로 통하는 단골손님이지만 지겨운 외상 손님이기도 한 정체 모를 남자는 오늘도 닭만 채가고 돈은 주지 않는다. 그 남자는 사실 좀비다. 그 좀비의 앞집에 착하고 예쁜 미술학도가 사는데, 그녀는 청소년기의 나쁜 기억 때문에 필수전공인 누드화를 그리는 데 애를 먹는다. 이렇게 보니 아무래도 전통적인 좀비영화의 내용은 아닌 듯싶다.
<미스터 좀비>의 좀비들은 장르적 구현물이 아니다. 암흑에서 올라온 불멸의 무적자로서 장르적 쾌감을 자극하는 그런 존재들이 아니다. 대신 이 영화에는 비교적 잘 드러난 질문이 있다. 사회의 무엇이 우리를 살아있지만 죽은 것처럼 만드는 것인가, 어떤 사람들이 그러한가. 영화에서 좀비가 되어가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사회의 병폐와 연관되어 있는 건 그런 질문이 낳은 설정일 것이다. 영화 속 원조 좀비 일명 깔깔이는 한눈에 척 보아도 한 맺힌 취업 준비생이다. 영구네 통닭의 사장은 말 그대로 못사는 서민이며 그는 딸의 학자금에 쓸 돈을 작전주에 밀어 넣었다가 낭패를 본 다음에는 사채업자에게까지 손을 벌리게 되고 그러다 좀비가 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우연히 그와 알게 된 천사 같은 미술학도가 그에게 구사일생의 열쇠를 쥐어줄 것이다. <미스터 좀비>는 좀비영화가 아니라 좀비를 권하는 사회에 관한 영화다. 이 불쌍한 좀비들의 사회적 태생도 이해되고, 소박하지만 삶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긍정적 결론에도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성긴 부분이 많고, 가장 중요한 영화적 호소력을 찾는 게 쉽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