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펴는 순간 입안에 침이 고였다. 자동차, 의자, 드레스, 신발. 세상을 바꾼 각 분야의 50가지 디자인을 모은 디자인 뮤지엄 시리즈 네권이 나란히 선을 보였는데, 갖고 싶은 물건과 아름다운 물건투성이라 아찔해지는 정신을 다잡기가 미션 임파서블. 이 시리즈를 낸 디자인 뮤지엄은 런던 템스 강변에 위치한 작은 박물관이다. 디자인 뮤지엄에서 자동차, 의자, 드레스 등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디자인 분야의 주요 오브젝트를 선정해 소개한 결과물이 이 책이다. 디자인 뮤지엄의 디렉터인 데얀 수딕은 각 책에 의미있는 서문을 적었는데, 왜 의자를, 신발을, 드레스를, 자동차를 이야기하는지 일갈할 수 있게 해놓았다. <세상을 바꾼 50가지 의자>의 서문에서 데얀 수딕은 이렇게 말한다. “영어로 ‘chair’라는 단어는 의자 외에도 신분이나 권위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한 단어에 다양한 의미가 있는 만큼 오랜 역사가 의자에 스며 있습니다. 또한 디자이너들은 주어진 제한된 공간에 배치할 의자를 제작해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의자는 소설보다는 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답니다.” 그렇다면 신발은? “유리는 발 위에 입는 한벌의 옷으로서 신발이 어떻게 편안함과 자기만의 이미지, 그리고 패션과 테크놀로지를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이 시리즈의 장점은 화보와 글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데 있다. 뭐 하나 버릴 페이지가 없다. 이를테면 이사할 때 신발장의 크기와 상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을 바꾼 50가지 신발>의 곳곳에서 웃고 무릎을 치고 메모를 하게 될 것이다(참고로 나는 <세상을 바꾼 50가지 의자>에서 특히 그런 행동을 많이 했다). 예컨대 마놀로 블라닉에 대한 글 중 이런 인용구. “만약 신이 우리가 플랫 슈즈를 신기를 원했더라면 마놀로 블라닉을 창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화려하고 실험적인, 천재적인 동시에 워킹에 숙련된 모델마저 휘청거리고 걷게 만들었던 초창기 이야기에 맞물린 그림은 디자이너 오시 클락의 1972년 스케치다. 책이 담은 물건도 책 자체도 물욕을 자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