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총리가 물러나고 4대강 총리가 들어섰다. ‘소장수의 아들도 총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겠다’고 포부를 밝혔는데, 소를 상시적으로 사고팔 정도면 농촌에서는 서민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반박이 따랐으나, 스스로 내세우는 ‘소통과 통합’을 강조하기 위한 애드립(개드립 아님)으로 받아들이련다. 여론에 밀려 정부가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4대강 사업으로 바꿔 추진하겠다고 할 때 관련 지방자치단체장 중 유일하게 “그러는 건 직무유기!”라고 목소리 높였고 지난 6월 지방선거에도 불출마해 어떤 식으로든 사장님, 아니 대통령님께 요긴하게 쓰일 인물이었다는 세평에 무게가 실린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전형적인 깜짝인사로, 검증되지 않고 신뢰할 수 없는 리더십”이라고 씹었는데, 국민과의 소통에 앞서 당청 소통부터 하셔야 할 듯. 통합까지는 뭐… 당신들도 그게 되겠어요? 여권의 대통령 후보감들을 ‘전국구’가 아닌 ‘지역구’로 만들려는 속인데 말이다. ‘경남의 아들’을 띄우면 부담스러운 그녀는 ‘경북의 딸’로 위상이 정해질 테고. 그래야 이래저래 분할·관리·통제가 편하니까.
이번 개각에 국토, 해양, 환경부 장관이 유임된 데서 보이듯이 집권 후반기는 4대강 사업 속도전에 올인할 모양이다. 1년 전 여름 대통령께선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가 쓴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을 읽으셨다는데, 지난주에도 말했듯이 그 책에서도 보고 싶은 것만 골라보신 게 틀림없다. 니버는 “개인이 어떤 명분이나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헌신하는 경우에도 권력 의지(힘에의 의지)는 여전히 남아 있게 된다”고 말했다. 강준만 아저씨는 이를 두고 “공적인 명분과 사적인 출세욕(명예욕)은 뒤섞이게 마련인데, 사적인 출세욕이 공적 명분의 성공을 압도하는 일이 많다는 뜻”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한마디로 도덕적임을 과신하지 말고 늘 조직과 자신을 의심하라는 소리다. 하물며 ‘스스로 도덕적이지도 않은’ 경우임에야.
현재의 권력이 미래의 권력을 좌우하려는 것은 이미 ‘도덕의 범주’가 아니다. 권력 자체의 ‘생존의 범주’에 가깝다. 그러나 4대강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시퍼렇다. 니버의 유명한 기도문을 그분께 들려드리고 싶다. “어쩔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어쩔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주시고, 그리고 이를 구별하는 지혜도 주소서.”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