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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도록 궁금하다! <악마를 보았다>
주성철 2010-08-17

제한상영가 논란 속 김지운 감독을 만나다

살인마 최민식과 복수심에 불타는 이병헌, 그리고 한국영화계에 ‘트렌드 세터’라는 표현을 적용해본다면 가장 잘 어울릴 법한 김지운 감독의 만남. 제목에서 풍기는 기운도 그러하지만 <악마를 보았다>는 두말할 것 없이 올해 하반기 가장 뜨거운 영화다. <달콤한 인생>(2005)의 선우,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창이에 이르기까지 최근 김지운 영화의 페르소나로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이병헌과 살인마를 연기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입 닥치고 그저 바라보게 만드는 힘을 지닌 최민식의 충돌은 ‘악마’라는 단어와 어우러져 용광로처럼 꿈틀거린다.

하지만 영화를 향한 세간의 관심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지난 8월4일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살인과 복수와 관련된 몇몇 장면들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현저히 훼손’하고 있다며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린 것. 그리하여 애초 5일 열릴 예정이었던 기자시사회가 한주 뒤로 밀려 12일 개봉일 전날 열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됐다. 최종 등급 문제와 개봉일 변경 여부는 여전히 미정인 상태. 김지운 감독에게 논란 속의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 대해 묻고 지난 현장의 기억을 담은 포토 코멘터리를 함께 싣는다.

내 영화 중 가장 ‘감정’과 ‘본능’에 충실하다

-언론 시사회는 물론 이미 개봉일을 못 박은 상태에서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아 걱정이 클 것 같다. 살인마 경철(최민식)을 향한 피해자 수현(이병헌)의 입장에서 전개되는 영화에서 그 ‘악마성’을 거세하라는 얘기니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현재 기분은 어떤가. =너무 많은 일들이 시시각각 생겨나고 있어서 정신이 없다. 어쨌건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고 난 뒤 그래도 정해진 개봉일에 관객과 만나야 한다는 가정하에 작품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손을 보고 있다. 특정 장면들을 통째로 덜어낸다기보다 문제가 된 장면들의 컷 길이 정도? 지금 기분은 뭐,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그런? (웃음) 요 며칠 동안 정말 영화 속 수현의 기분이 됐다가 또 경철의 기분이 됐다가 그런다.

-애초 최민식의 제안으로 <악마를 보았다>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 당시 당신이 뛰어들기 전부터 최민식이 처음부터 하려고 했던 역할도 살인마 장경철이었나? 영화를 두고 최민식과 이병헌의 캐릭터를 맞바꿨으면 어땠을까, 흥미롭게 예상하는 시선들이 많아서 궁금하다. =<아열대의 밤>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했던 이 작품은 지금 데뷔작 <혈투>를 촬영 중인 박훈정 작가의 시나리오였다. 그리고 언론에 보도된 대로 애초 최민식 선배의 제안으로 시작한 게 맞다. 그런데 당시 최민식의 역할은 반대였다. 본인은 살인마를 쫓고 복수하는 수현 역할을 하려 했다. 거기서 내가 바꿔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한 거다. 최민식이라는 배우 안에서 꿈틀대는 뜨거운 마성의 에너지 같은 게 오히려 경철에게 잘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경철은 원색적이고 본능적이면서 외적으로 발산되는 광기가 중요하다. 그걸 최민식이 연기한다면 이제껏 보지 못한 사이코패스 캐릭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흥분이 있었다. 살인마라는 전형적인 악마성도 갖고 있으면서 그와는 또 다른 느낌의 카리스마도 표출할 수 있는 묘한 이중적 매력을 풍기지 않을까 했다. 그땐 이병헌을 섭외하기 전이었고 누가 수현을 맡을지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제안을 한 거였다.

-공개된 스틸들을 보면 경철과 수현은 의상부터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느낌이다. 어떤 컨셉을 가지고 접근했나. =경철은 동선 자체가 제멋대로고 쉽게 파악하기 힘든 인물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이라 강렬한 원색의 느낌을 주고 싶었다. 노란색 트레이닝복과 빨간 체크 남방, 그가 지닌 본능적이고 원색적이고 단순한 강렬함이 시각적으로 발현되길 원했다. 반면 수현은 단정하고 정돈된 느낌의 남자다. 어떤 순간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자신이 꿈꾸는 복수를 행하는 데 있어 실수하지 않으려면 철저하게 냉철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블랙 톤으로 가면서 짙은 브라운 계열의 의상도 더했다.

-촬영 기간 중에 월드컵이 열렸다. 스탭들 모두 모여서 봤나? (웃음) =정말 빡빡한 촬영 일정이었지만 월드컵을 피해가긴 좀 그렇지 않나? (웃음) 대한민국 대 아르헨티나전을 다 같이 모여서 스크린을 쳐놓고 봤다. 그때 촬영하던 데가 황순원문학촌의 소나기마을과 가까워서 거기 주차장에 자리잡고 봤다. 하여간 이번에 스탭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촬영 마지막 날 단체 사진도 세트에 들어가기 전에 찍었다. 쉽게 끝날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는데 어쨌건 가장 좋은 상태에서 촬영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그 직전에 찍자고 꼬였다. 그래서 사진만 보면 다들 표정이 너무 밝고 좋은데(웃음) 세트에 들어가서는 정작 서른 몇 시간 동안 마지막 촬영을 했다. 정말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다.

-주변 캐릭터들도 궁금하다. <세븐데이즈> <베스트셀러>에 악역으로 나온 최명수와 <의형제>에 ‘그림자’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전국환 선생이 출연한다. =최명수씨는 최무성으로 이름을 바꿨는데 <악마를 보았다>에서는 경철의 옛 친구이자 또 다른 살인마 태주로 나온다. 경철과 태주는 과거 지존파 같은 살인마 집단 동료였다고 추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전국환 선생은 경철에게 죽임을 당한 수현의 약혼녀 주연의 아버지로 나오는데, <의형제>처럼 강한 캐릭터는 아니고 전형적인 아버지이자 수현의 예비 장인 같은 역할이다. <의형제>의 ‘그림자’같은 모습을 떠올리면 안될 것 같다. (웃음) <의형제>를 보고서 캐스팅했다기보다 그보다 앞서 <달콤한 인생>에도 여러 보스 중 한명으로 출연한 적 있다.

-역시 가장 큰 기대는 최민식과 이병헌 두 사람이다. 지난번 인터뷰 때는 두 사람이 영화에서 본격적으로 충돌하기 전이었다. 그 이후 충돌을 목격하고 난 지금은 어떤가. =그냥 말 그대로 두 사람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다. 연출자의 입장을 떠나 개인적으로 두 배우의 팬이기도 하다. 두 사람 모두 상투적인 면이 전혀 없고, 너무나 상반된 입장에서 상반된 감정으로 부딪히고 충돌하는 화학적 에너지가 엄청난다. 정말 그런 느낌을 주는 배우들은 몇 안된다. 전에 <달콤한 인생>을 찍고 난 다음 이병헌이 가장 아름다울 때 찍어서 만족했다, 뭐 그런 얘기를 한 적 있는데 이번에는 최민식이 배우로서 가진 표정이나 얼굴이 가장 좋을 때 <악마를 보았다>를 찍어서 감격스럽다고 말할 수 있다. 호흡 하나만으로도 삶의 여러 층과 주름을 마법처럼 끌어낸다. 최민식은 워낙 강렬한 배우고 이 영화에서는 아주 잔인한 악마 같은 사람이지만 기본적으로 배어 있는 인간적인 정감이나 감성을 떨쳐내기 힘든 얼굴을 갖고 있다. 그런 막무가내, 점입가경, 예측 불허의 캐릭터를 너무 잘 표현했다. ‘왕의 귀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웃음) 이병헌 역시 차갑게 절제된, 쉽게 요동치지 않는 그 극단의 광기를 잘 표현했다. 영화 카피로 뜨거운 불꽃 같은 광기, 얼음장 같은 광기의 대결, 그런 얘기들을 하는데 정말 그 느낌을 피부로 뼈저리게 느낀 시간들이었다.

-지금 감정이 복합적일 것 같다. 영화의 공개를 기다리는 감회는 어떤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난 이 영화를 본능적인 감각으로 다루고 싶었고 끝까지 가는 지독한 복수극으로 만들고 싶었다. 어떤 계산된 연출 이전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악마 같은 놈에게 잃었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정말 힘든 마음으로 만들었다. 보는 사람들 모두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될 거다. 그러다보니 장르영화 안에서 어떤 밸런스를 잡고 가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그 상태로 배우와 대화를 나누고 가이드를 제시하고 그들 안의 캐릭터를 끌어내고 또 점화시키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연기가 영화에서 눈부시게 표현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지금 돌이켜볼 때 느끼는 결과적인 모습이고, 악마성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복수의 끝과 정점에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정말 모두의 진을 짜내는 독한 작업이었다. 결과는 흡족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내 영화 중 가장 ‘감정’과 ‘본능’에 충실한 영화로 보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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