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맥그리거, 찰리 부어맨 지음 이레 펴냄
우연히 세계지도를 펴든 배우 이완 맥그리거는 유라시아 대륙을 바이크로 횡단하는 백일몽에 빠진다. 바이크를 미치도록 사랑하는 이완과 그의 친구 찰리 부어맨은 이 무모한 계획을 밀어붙인다. 다큐 제작팀을 끌어들여 몇달 만에 길 떠날 준비를 끝낸 것이다.
브뤼셀과 프라하를 지날 때만 해도 여느 여행기와 다름없다. 아름다운 풍광, 손님을 환대하는 지역 주민, 매끈한 도로. 그러나 동유럽에 접어들면서 날것의 삶이 펼쳐진다. 지치고 헐벗은 농민들이 있는 황량한 들판, BMW 바이크를 구경하려고 자꾸 트집 잡는 경찰. 우크라이나의 어느 저택에선 손님에게 장난 삼아 기관총을 들이대니 그저 혀를 내두르는 수밖에. 또 카자흐스탄과 몽골을 지날 무렵 그들의 적은 자연 그 자체가 된다. 바이크 타이어가 견뎌내질 못하는 자갈밭 오프로드, 흑거미와 전갈이 무서운 캠핑. 자연은 그들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그들은 자신과의 싸움에 몰두한다. 조금이라도 중심에서 벗어나면 “허허벌판에서 어떻게 할지 모르는 처지”가 되는 배우의 삶을 살듯 치열하게. 압권은 ‘지옥의 길’로 비유되는 시베리아 강 건너기. 바이크로는 건널 수 없어 트럭을 타야 하는데 트럭마저 떠내려갈 기세다. 이처럼 광포한 환경과 맨몸으로 맞선 흔적들이 이 여행의 매력이다.
전문 여행가가 썼다면 좀더 유려하고 감각적인 문장들을 만날 수 있었으리라. 대신 책은 배우들 내면의 속살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둘은 오랜 친구였지만 고된 여행 내내 여러 번 다투다 급기야 함께 쓰던 2인용 텐트를 치우고 1인용 텐트를 산다. 싸움에 지쳐 각방을 쓰는 부부처럼. 그 결과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이완이 괜한 짜증을 부리면 찰리는 그가 “춥고 피곤하고 질려서 그것을 풀 사람이 필요했다”고 알아주는 것이다. 그외 200개가 넘는 가축고환으로 끓인 수프를 대접받은 사건, 차가 뒤에서 들이받아 이완이 죽을 뻔한 일 등 흥미진진 에피소드들이 있다. 2004년 TV다큐로도 방영된 이들의 여행은 2007년 아프리카 대륙 여행으로 이어졌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