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여행을 가게 되면 주로 도쿄나 교토를 택하는 나의 여행 계획은 이런 식이다. 규동-카레우동-초밥, 아사가유(죽)-흑돼지 돈가스-야키소바. 먹는 것 이외에 루트 변경이라면 미술관. 유사한 전시라고 해도 일본에는 더 많은 작품이, 더 중요한 작품이 걸리곤 하기 때문이다.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동네마다 있다는 점은 일본의 최대 장점이다. 롯폰기에 먹고 놀려고 갔다가 모리 미술관에서 하는 근사한 전시(전시를 보고 전망대 야경을 보는 코스를 추천한다)에 낚이는 일은 질리지도 않는다. ‘여행인’ 시리즈 1권 <도쿄 맛집>과 2권 <도쿄 아트 산책>은 이런 특화된 여행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적격인 가이드북. 예쁜 것들과 맛있는 것들이 나를 보며 미소짓고 있… 다는 망상에 빠지게 된다.
<도쿄 아트 산책>은 도쿄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담았다. 그 어떤 쇼핑센터보다 매혹적인 지름신을 만날 수 있고, 그와 동시에 문화적인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즐비하다. 시부야에 있는 분카무라는 대형 복합 문화 시설이다. 지하 1층에는 전시가 주로 열리는 더 뮤지엄이, 1층에는 연극 등 무대 공연이 가능한 시어터 코쿤이, 3층에는 오페라와 클래식, 발레 등 음악 전문 공연을 하는 오차드홀이 있고, 6층에는 극장이 있다. 미술관 맞은편에 있는 노천카페 겸 레스토랑 카페 레 뒤 마고는 파리의 카페 뒤 마고의 첫 해외 제휴점이고, 그 바로 옆에는 예술 관련 서적이 즐비한 나디프 모던이라는 아트숍이 있다. 메구로 인근에 있는 북유럽풍의 디자인 호텔 클라스카도 소개되어 있다. 관광이 불편한 곳에 자리를 잡았는데도 15개인 객실은 거의 항상 예약이 차 있다. 물론 숙박비도 만만치 않다. 이 호텔 2층에는 갤러리와 아트숍을 겸비한 공간이 있는데, 디자인 호텔이라는 컨셉을 더없이 잘 살렸다. 청바지 브랜드 디젤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디젤 데님 갤러리 아오야마를, 화장품 브랜드 시세이도의 패키지 디자인에 관심이 있었다면 시세이도 갤러리&하우스 오브 시세이도를 찾아보시길. <도쿄 아트 산책>이 좋은 이유는, 큰돈 안 들이고도 도쿄를 즐길 수 있는 방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덥거나 추울 때 미술관, 박물관은 낙원이다.
<도쿄 맛집>쪽은 돈이 없으면 절대 맛볼 수 없는 식도락의 낙원 도쿄를 보여준다. …일단 침부터 삼키고. 성인 남자의 엄지손가락 두께의 돈가스로 만든 가츠산(돈가스 샌드위치)을 파는 마이센과 다다미에 앉아 정원을 내다보며 먹는 안미쓰(묵과 과일, 젤리, 떡 그리고 팥소를 얹은 것에 꿀을 뿌려먹는 것)가 있는 고소안과 둘이 먹다 하나가 임신을 해도 모를 정도로 야들거리는 면발의 우동집 쓰루통탄…. 생각하는 것만으로 위가 꼴리는 맛집 총집합이다.
자, 이제 여행 루트는 다 짰다. 돈만 벌면 된다. 아아, 눈에서 물이 나오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