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보고 에로영화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여성 감독인 이구치 나미의 <남의 섹스를 비웃지마>는 지난해 <씨네21>이 개봉 촉구한 영화 중 한편이다(당시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그만큼 일본 개봉 당시 작품성을 어느 정도 인정받았다는 말이다. 3년 만의 한국 개봉이라 뒤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남의 섹스를 비웃지마>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구석이 있는 영화다.
‘우연’이 반복되면 길거리에서 만난 여자도 ‘운명’의 상대가 된다. 미대생 미루메(마쓰야마 겐이치)는 새벽에 우연히 자신의 트럭에 태운 유리(나가사쿠 히로미)를 다음날 학교 벤치에서 다시 만난다. 알고 보니 유리는 미대의 석판화 강사였다. 39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동안인 외모, 자유분방한 행동 등은 19살 미루메의 마음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미루메는 판화 작업의 조수, 누드 모델 등 유리의 작업을 돕다가 그녀와 섹스를 하게 된다. 섹스를 나눈 만큼 미루메는 유리와 진지한 관계가 됐다고 생각하지만 유리는 단순히 “몸을 만지고 싶었다”고 말할 뿐이다. 결정적으로 그녀는 유부녀였다.
내용만 가지고 그렇고 그런 불륜 드라마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불륜은 중요하지 않다. 정작 감독이 흥미를 가지는 건 서로 다른 입장의 두 남녀, 그리고 미루메를 짝사랑하는 엔짱(아오이 유우) 등 주변 인물들의 행동과 심리 묘사다. 그래서 카메라는 인물의 행동을 기다리고 지켜본다. 인물들 역시 카메라가 있는 듯 없는 듯 자유롭게 프레임을 드나든다. 정적인 순간들 사이에서 인물간의 미묘한 긴장감, 공간의 분위기, 감정의 흔들림이 형성된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감독은 고민 많은 청춘의 마음을 밀도있게 그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