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4회를 맞는 몬트리올판타지아영화제가 예년보다 더 알찬 프로그램으로 찾아왔다. 영화제는 세르비아 호러 필름을 집중 조명하는 섹션(올해 부천에서 상영된 <세르비안 필름>도 포함됐다!)과 켄 러셀 회고전 등 몬트리올의 장르 팬들을 위한 선물이 가득했다. 특히 켄 러셀 회고전에서는 대표작 <악령들>(The Devils) 상영과 함께 감독과의 대화시간도 마련됐다. 늘 한국영화에 관심을 가져왔던 판타지아영화제는 이번엔 아예 한국영화 섹션을 따로 만들어 이준익 감독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비롯해 무려 14편을 상영했다. 이준익 감독은 마지막 날 최우수 감독상을 거머쥐었고, 이해준 감독은 <김씨표류기>로 베스트 아시아영화 관객상 3위와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장훈 감독의 <의형제> 역시 영화 매체들의 ‘머스트시’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았다.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날을 장식한 독일 표현주의 감독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 복원판 상영. 1927년작 <메트로폴리스>는 이미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어 큰 관심을 받았다. 시네필에게는 1927년 최초 상영 길이인 150분으로 공개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메트로폴리스>는 지난 2008년에 아르헨티나에서 원본이 발견된 이래 많은 영화제에서 본래 감독이 원했던 버전으로 상영되었는데, 이번 상영본은 25분가량 추가된 1257컷짜리 버전이다. 빅 이벤트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퀘벡의 유명한 무성영화음악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가브리엘 티바도가 오직 <메트로폴리스>를 위해 새롭게 작곡한 음악을 영화상영시 13명의 오케스트라 단원과 함께 직접 연주했다. <메트로폴리스>가 상영되는 3천여석의 플라스 데자르 윌프레드 공연장은 거의 만석이었다. 몬트리올에서도 평일 공연장이 꽉 차는 것은 거의 드문 일이다. 공연장으로 더 알려진 곳에서 영화를 상영한다는 사실과 인생에 단 한번의 기회가 될지도 모르는 <메트로폴리스> 원본 상영이라는 점이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을 것이다. 가브리엘 티바도가 새롭게 작곡한 음악은 영화의 이미지와 멋지게 싱크로되었으며, 몇몇 장면은 지휘자의 느낌에 따라 변형할 수 있도록 자유로움을 준 듯했다. 2시간30분여의 영화상영 시간 내내 짧은 탄식이 나오기도 했고 특히 로봇마리아가 나올 때는 유난히 폭소가 많이 터졌다. 영화 상영과 공연이 끝나고도 관객은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그들은 5분이 넘도록 기립박수를 보내며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훌륭한 연주를 상찬했다. 83년 전의 영화를 보면서 밤을 즐기는 2010년의 판타지아영화제. 100년 뒤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또 어떤 영화를 보며 축제를 즐기게 될까.
두개의 챔버오케스트라로 두 계급의 느낌을 다르게
<메트로폴리스> 복원판에 새로운 음악 입힌 작곡가 가브리엘 티바도
-본인을 소개해달라. =무성영화를 위한 영화음악을 작곡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고 퀘벡에서 나고 자랐다. 줄리안 루퍼츠의 1925년작 <오페라의 유령>의 음악을 작곡해서 조금 유명해졌다.
-작곡을 결심한 계기가 있다면. =나는 원래 시네마테크 퀘벡쿠아 영화관의 피아티스트와 작곡가로 22년을 살았다. <메트로폴리스>는 내가 처음으로 연주했던 영화다. 늘 다시 꼭 한번 작업해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꿈을 이루게 돼서 기쁘다.
-새롭게 작곡하면서 주안점을 둔 점이 있나. =원래의 사운트트랙은 좀 무겁고 오페라적인 느낌이었다. 나는 다르게 접근하고 싶었다. 바로 두개의 챔버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왼쪽은 현악기와 키보드로 구성해서 영화 속 지배자 계층을 표현하는 도시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고, 오른쪽에는 관악기와 오르간을 배치해 노동자 계층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다. 가운데 배치된 타악기는 이 두 계급을 이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완성된 작품을 본 소감은. =사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3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영화는 2시간 반이 훌쩍 넘는다. 영화제 몇주 전까지도 다 마치지 못해서 많이 불안했었다. 첫 번째 버전을 마치고도 바이올린 부분을 계속해서 썼다. 지금은 원곡과 다른 나만의 색깔이 드러나 기쁘다. 예를 들면, 노동자들이 지하세계로 내려갈 때 원곡에서는 장엄한 미사곡의 느낌이 났는데 이번에 나는 벨소리 하나로 표현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