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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페트로프] 러시아 문학을 살아숨쉬게 만드는 남자
장영엽 사진 백종헌 2010-08-04

제14회 서울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특별전 감독 알렉산더 페트로프

<알렉산더 페트로프>

<마이러브>

그는 영어를 하지 못했다. 아주 간단한 영어 인사에도 수줍은 미소로 답하며 어색해 했다. 그러나 인터뷰를 하는 내내 이것이 알렉산더 페트로프를 애니메이션계의 거장으로 만든 원동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드레이 플라토노비치, 도스토예프스키 등 조국 러시아 작가들의 문학 작품을 작품의 소재로 즐겨 삼고, 19세기 러시아 화가들에 대한 애정을 피력하는 페트로프에게선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의 갈 길을 묵묵하게 걷는 어떤 고집이 느껴졌다. 2000년 <노인과 바다>로 아카데미 단편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러시아 유화 애니메이션 감독 알렉산더 페트로프가 한국을 찾았다. 2007년작 <마이 러브>에 관객상을 안겨준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하 SICAF)이 이번에는 특별전으로 그의 작품을 초청한 것이다. 알렉산더 페트로프를 CGV압구정 근처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인터뷰 장소에서 이국으로의 낯선 여정을 함께한 그의 부인 또한 볼 수 있었다. 어디로 이동하든 늘 함께라고 했다.

-본래 화가를 꿈꿨다고 들었다. 어떻게 애니메이션 감독이 됐나. =처음엔 영화계에서 미술감독으로 일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조언을 받고 모스크바영화학교에 입학했다. 나는 이전에 회화와 디자인도 공부한 적이 있어 비록 영화학교에서 수업은 받았지만 그것 또한 미술 교육의 연장선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르메니아에 있는 한 스튜디오에서 일을 하게 됐다. 영화도 많이 제작하는 곳이었는데, 애니메이션 부문 사람들과 함께 그곳에서 두달을 같이 살며 일했다. 그렇게 작업을 하다 보니 애니메이션 분야에 흥미를 느껴 계속 일을 하게 되었다.

-회화를 공부한 전력이 있어서인지 당신의 작품은 무척 회화적이다. 혹시 영향을 받은 화가가 있는가. =19세기 러시아 화가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바실리 수리코프, 발렌틴 세로프, 일리야 레핀. 이렇게 세명의 화가들을 좋아하고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초기 스승을 꼽으라면 단연 렘브란트일 것이다. 그의 그림을 볼 때마다 아직도 나는 감동하고, 가슴속에서 뭔가가 용솟음치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프랑스의 몇몇 인상주의 화가들을 좋아하는데…. 나는 어떤 의미에서 나 스스로도 인상주의 작가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작품은 상당 부분 러시아 문학에 기초하고 있다. <소>는 안드레이 플라토노비치의 소설을, <어리석은 인간의 꿈>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다. 이처럼 러시아 문학 작품을 소재로 종종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는 이유가 있나. =나와 추구하는 부분이 맞기 때문인 듯하다. 러시아 작가들은 내면적이고 철학적인 고민을 많이 한다. 도스토예프스키, 체호프, 톨스토이의 작품들이 그렇다. 나도 애니메이션 속에 그런 부분들을 담고 싶다. 그래서 러시아 소설들을 소재로 즐겨 택하게 된다.

-<노인과 바다> <내 사랑> 등 당신의 애니메이션에는 꿈이나 환상을 좇는 주인공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 모티브에 끌리는 건가. =그렇다. 아까 등장인물의 외면보다 내면의 이야기를 다루는 데 관심이 많다고 말했는데, 나는 꿈이 인간의 의식을 한 단계 더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꿈이나 환상을 작품에 넣으면 등장인물의 내면세계를 좀더 은유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는 해변에 사자가 등장하는 꿈을 꾸는 대목이 나온다. 나는 여기에 노인이 바닷속 세상을 바라보는 꿈을 첨가했다. 바닷속의 자유롭고 아름답고 힘이 센 물고기를 등장시킴으로써 노인이 얼마나 자유를 사랑하는지 관객은 더 빨리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노리는 효과도 이런 거다.

-당신은 오일페인팅 기법을 애니메이션에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유리판 위에 유화를 그리고 이를 카메라로 촬영하는 작업이 매우 고단하다고 들었다. 이 작업을 혼자서 해내기엔 무리가 있을 듯한데. =그래서 요즘엔 아들과 함께 작업한다. 아들은 <노인과 바다>를 만들 때부터 나와 함께 작업했다. 당시에 내가 잘 때는 아들이 그리고, 아들이 잘 때는 내가 그리며 밤새 작업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차기작 계획은 어떻게 되나. =비밀이다. 장편애니메이션이 될 것이며, 역시 유화 기법을 사용한 작품이 될 것이라는 얘기만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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