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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병명 찾아 삼만리
이다혜 2010-07-29

위대한, 그러나 위험한 진단

리사 샌더스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하우스>는 기존 메디컬드라마와 분위기가 판이하다. 흔히 메디컬드라마라고 하면 병마와 싸우는 환자, 그 환자를 성실하게 돌보는 의사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의료진간의 사랑 이야기를 곁들이는 정도였다. 물론 병원 내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 <하얀거탑> 같은 특이 케이스도 있었지만 의학드라마는 ‘휴먼다큐’의 픽션 버전 같은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주에서 제작되어왔다. 하지만 <하우스>의 주인공은 환자를 싫어하는 약물 중독 의사다. 휴 로리의 섹시한 연기(무엇을 섹시하냐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의견이 갈릴 여지가 있다)는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걷는, 사탕처럼 입안에 독한 진통제를 털어넣는, 환자는 거짓말쟁이라고 입에 달고사는, 팀원인 의사들의 사생활을 들춰 농담거리로 삼는 의사 하우스를 고독한 하드보일드 영웅처럼 만들었다.

그가 하드보일드 영웅처럼 보인다면 그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병명을 찾아내는 진단전문의라는 점 때문이다. 닥터 하우스는 마치 탐정처럼, 환자가 보이는 증상과 생활습관, 비밀과 거짓말을 하나씩 짚어가며 병명을 밝혀 진단을 내리고 환자의 목숨을 구해낸다. <위대한, 그러나 위험한 진단>은 바로 <하우스>의 모태가 된 의학 칼럼 ‘진단’을 쓴 예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리사 샌더스의 글을 모은 책이다(그녀는 <하우스>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성격은 괴팍하지만 다른 의사들이 포기한 환자들을 진단해내는 천재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의사가 등장하는 내용의 드라마”의 의학자문을 수락한 이유는 단순했다. “이 드라마가 그리 오래 방송될 것 같지 않아서.” <하우스>라는 드라마의 모티브가 된 글답게, <위대한, 그러나 위험한 진단>에는 각종 특이한 진단 사례가 실려 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심한 구토증상에 시달리는데 더운물로 샤워를 할 때만큼은 구토증상이 가라앉는 환자가 있었다. 한국계가 분명한 1년차 레지던트 장윤희 선생은 도통 알 수 없는 특이증상의 환자 문제를 해결하고자 무려 구글에 검색을 시도하고 답을 찾아낸다! 장기간 마리화나를 피운 경력이 있는 환자들에게서 나타나곤 하는 증상이라는데, 환자는 그 진단을 믿지 않았고, 결국 퇴원하고 재입원을 반복했다. 도시전설이 실제 사례로 등장하기도 한다. 22살의 젊은 여자가 사랑니를 뽑은 뒤 전신피로와 통증으로 고생하다가 황달, 고열, 혈액응고체계 비정상으로 죽어가는 경우.

<하우스>의 모델이 된 유명한 진단학자인 페이스 피츠제럴드 박사의 강연 내용도 소개된다. 피츠제럴드 박사는 “내과의 매력은 단서로 문제를 해결하는 추리소설 같죠. 우리는 탐정이에요. 문제를 찾기 위한 과정을 즐기지요.” 드라마 <하우스>만큼이나 특이한 사례와 독특한 추리과정, 뜻밖의 해답이 이어지는데 의학적 지식이 없는 독자(이를테면 나 같은)도 쉽게 따라갈 수 있다. 다만, 잘못된 진단 때문에 고생해본 사람이라면 끝없이 이어지는 시행착오 과정 자체가 악몽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