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 백두대간의 이광모 대표가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이하 CINDI)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영화 <아름다운 시절>을 연출한 감독이고 대학교수였으며, 현재 영화사 백두대간 대표로 예술영화전용관 아트하우스 모모까지 운영하고 있는 그에게 또 하나의 직함이 붙은 것이다. 지난 10년간 전세계의 예술영화를 보고 선별해 한국 관객에게 소개했던 만큼 그리 어긋나는 직함은 아니다. 새로운 집행위원장의 영향일까. 올해 4회를 맞은 CINDI는 디지털영화에 대한 관심에서 나아가 3D영화에 대해 고민하고,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35mm영화 <엉클 분미>를 통해 또 다른 영화적 언어를 탐구해본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CINDI의 기자회견의 있던 지난 7월20일, 이광모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집행위원장은 어떻게 맡게 됐나. =제안을 받았고, 큰 부담없이 왔다. 내가 하는 게 맞는가 싶기는 했다. 일단 기존에 해오던 분들이 워낙 잘하셨으니까. 그래도 오랫동안 정성일 선생에게 큰 신뢰를 갖고 있었고, 서로 교류를 하면서 도움을 주고받았다. 이번에도 나는 기존에 일하는 사람들이 더 잘할 수 있게끔 해주자는 생각으로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전처럼 공동집행위원장 구조가 아닌 것도 정성일 프로그램 디렉터가 좀더 전문적인 철학을 갖고 프로그래밍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웃음)
-그동안의 CINDI, 그리고 CINDI에서 상영된 영화들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갖고 있었나. =미안한 얘기인데, CINDI에 와본 적이 없었다. 사실 지난 7, 8년간 영화제를 거의 다니지 않았다. <씨네21>을 읽어본 지도 7년이 지난 것 같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도 여기에 와서 알았다. 스탭들도 깜짝 놀라더라. (웃음) 그동안 나는 감독으로서 작품 준비에 집중하려 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 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데 난파되고 표류하면서 이곳저곳 엉뚱한 곳으로 간 것 같다. 그중 하나가 여기다. (웃음)
-그래도 집행위원장이기 때문에 영화제로서 CINDI의 색깔과 발전 방향에 대해 고민한 건 있지 않나. =그동안 CINDI는 디지털영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아시아의 신인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나는 디지털 자체를 폭넓게 생각하는 편이다. 과거에는 디지털이 필름을 대체하는 도구이자 저예산영화의 방식이란 개념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35mm영화에도 디지털 과정이 들어가 있다. 디지털을 필름의 대안 혹은 대체로 볼 게 아니라 함께 공존하는 기술로 봐야 할 것 같았고, 그 속에서 영화제의 성격도 확장시켜보자는 거였다. 35mm영화인 <엉클 분미>를 상영하고, 3D 컨퍼런스를 여는 것도 그런 개념의 확장에서 시작된 것이다.
-선입견으로는 CINDI와 3D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 3D에 대한 기존 논의가 산업적인 관점에서 3D의 미학과 기술을 논했기 때문인 것 같다. CINDI가 보는 3D는 어떤 건가. =디지털 개념을 확장한다고 했을 때, 3D를 무조건 수용하기보다는 한번쯤 제대로 검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제가 영화언어의 진화과정에 주목하는 건 당연하다. 말한 대로 지금 3D는 산업적으로 논의 중이고, 많은 장밋빛 예언이 넘쳐난다. 하지만 3D가 과연 2D의 발전선상에 놓여 있는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3D 본연의 성격과 한계를 검토하면 결국 지금의 2D는 무엇인가란 질문도 꺼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캐나다와 영국의 3D 관계자와 국내 촬영감독, 국내 3D 관련 업체들이 참여해 3D의 실체에 대해 적나라하게 이야기해볼 거다.
-이번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내년의 그림도 그려봤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건 청소년에 대한 영화교육 컨퍼런스다. 유럽에서는 ‘Young Audience’란 타이틀로 하고 있더라. 세계적인 추세가 예술영화를 보지 않는 쪽으로 가고 있다. 영화에 대한 주관적인 입장이 서지 않은 상태의 청소년 관객이 산업의 마케팅에 100%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건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다. 내년에는 유럽 전문가와 국내 전문가가 참여하고,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와 교사까지 대상으로 한 어떻게 교육을 할 것인지에 대해 실질적인 프로그램을 짜볼 것이다. 말하자면 미래의 관객을 위한 컨퍼런스다. 그리고 내년에는 영화제의 폭을 지금보다 더 확장하려고 한다. 35mm든 디지털이든 신인이든 거장이든 아시아영화든 아니든 <엉클 분미>처럼 영화언어의 최전선을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을 상영하는 섹션을 만들어볼까 생각 중이다.
-감독으로서 두 번째 연출작은 언제쯤 구체화할 예정인가. =일단 2012년에 관객에게 공개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나무그림동화>라는 작품이다. HD로 촬영할 계획이다.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는데, 지금은 소설로 작업을 바꾸었다. 원래 계획으로는 이미 끝났어야 하는데, 씨네큐브와 관련해 회삿일이 터지면서 거의 손을 못 대고 있었다.
-HD영화를 준비한다면 감독으로서도 CINDI가 중요한 계기가 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다. 지난 8년 동안 혼자 준비하다보니 오히려 이끼가 많이 낀 것 같다. 현실에서 테크놀로지는 빠르게 변하고 있지 않나. 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입장뿐만 아니라 감독의 입장에서도 정확한 영화적 도구를 찾아내는 건 해야만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