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되는 나날이다. 블록버스터영화 광고나 육아기에 대한 묘사에나 등장해야 할 구절을 이렇게 쓰게 될 줄이야. 공직(자) 윤리를 지원하라고 만든 곳에서 민간인 사찰을 한 것도 모자라 여당 중진의원 와이프의 뒤를 캐고, 일제고사의 폐단이 아무리 많다 해도 ‘국가주관 시험’인데 교장·교감이 커닝을 부추기거나 감독교사가 답을 알려주고, 국회의원이 대학생들과의 술자리에서 특정 직업을 비하하고 외모를 매개로 막말을 한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 그런 말 한 적 절대 없다며 버틴다. 나 너무 오래 산 거니? 여기까지 쓰다보니, 음…, 엄살이다. 솔직히 내 반평생(이 꼴 저 꼴 보더라도 어쨌든 꼭 평균수명까지는 살고 말겠어!) 많이 봐왔던 꼴이다.
공조직이 권력자 혹은 사익추구 세력에 알아서 충성해온 ‘관례’와 달리 이번에는 사조직이 대놓고 공조직에 들어가 ‘권력보위’를 미명으로 사익을 추구했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이다. 어쨌든 음지의 기억이 가득한 터라 논리가 자동으로 이해되기도. 그러게 왜 남경필 의원은 ‘형님 권력’을 대놓고 비판하셨나요. 전두환 각하 시절까지만 해도 무슨무슨 경시대회에서는 꼭 시험장으로 제공된 학교 학생이 1등을 먹고 종종 그 학생의 부모(대체로 육성회장)가 심사위원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봐야 했다. 학교로 오는 지원금과 교장·교감 등의 일신영달이 그때에는 비공식적이었다면 지금은 공식적이라는 것이 차이일까. 어쨌든 액수와 점수는 참으로 밀접한 관계였다. 술자리에 있던 학생들이 다 들었다고 확인하는 보도자료까지 냈는데도 금주의 인기검색어 강멍멍, 아니 강땡땡 의원께서는 막말에 이은 거짓말을 고수하신다. 이 두 말도 참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길지 않은 한나라당의 역사에서 익히 보아왔다.
자자, 이렇듯 다 알잖아. 참으로 ‘오래된 미래’ 잖아. 폭력적으로 관철되던 일이 야비하게 이뤄지는 것 정도의 차이랄까. 그런데 왜 건달이 지배하던 동네를 양아치가 접수해 활개치는 것같이, 세상이 뭔가 잘못 풀리고 있다는 기분이 들지? 막 향수병까지 도질라 그러네. 끙. 수사하고 징계하고 제명하는 게 제스처로 끝날 게 뻔해서일까. 지금 보는 것 ‘그 이상’을 보게 되는 일이야말로 없었으면 좋겠다. 충분히 불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