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취소의 공식적인 이유는 ‘수입사의 계약사정’이다. 박진형 프로그래머는 “계약상의 문제로 상영하기로 한 작품이 취소되는 경우는 어느 영화제나 자주 있지만, 그런 경우 영화제 전에 미리 이야기를 하는 게 수순”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미로비젼쪽은 “그때만 해도 프린트 수급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부천영화제 관객들이 성났다. 오는 7월23일 밤 12시에 예정됐던 <밀레니엄> 3부작의 상영이 취소된 탓이다. 영화제가 개막하기 열흘 전인 지난 5일에는 3부작을 개별적으로 상영하려던 일정이 취소됐었다. 심야상영만을 기대했던 관객으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관객은 부천영화제 게시판에 다음과 같이 항의글을 올렸다. “좀 너무한 거 아닙니까? 영화제가 무슨 도깨비시장도 아니고….” 상영취소가 공지된 건 영화제가 5일째를 맞은 지난 19일이었다. 부천영화제의 권용민 프로그래머는 “<밀레니엄>의 수입사인 미로비젼으로부터 상영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상영 4일 전인 19일이었다”고 말했다.
상영취소의 공식적인 이유는 ‘수입사의 계약사정’이다. 박진형 프로그래머는 “계약상의 문제로 상영하기로 한 작품이 취소되는 경우는 어느 영화제나 자주 있지만, 그런 경우 영화제 전에 미리 이야기를 하는 게 수순”이라고 말했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REC2>도 예매 이후 상영이 취소됐지만, 그때는 영화제 개막으로부터 일주일 전이었다. 그런데 <밀레니엄>처럼 이 시점까지 끌고 왔다는 건 옳지 않은 것 같다.” 미로비젼은 “<밀레니엄>의 제작사가 무리한 요구를 한 탓에 계약을 마무리할 수 없었고, 이걸 조율하다보니 결국 의도치 않게 마지막 데드라인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밀레니엄> 상영을 이미 1년 전부터 협의해왔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구체적인 협의가 있었다는 점에서 이 문제가 단지 “제작사의 무리한 요구”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미로비젼쪽은 부천영화제 기자회견 2주 뒤 <밀레니엄>의 상영시간 수정을 요구했다. 이미 공지가 나간 이상 수정이 어렵다고 판단한 영화제는 대신 미로비젼이 필요한 다른 조건이 있다면 그것을 수용하기로 했다. 미로비젼이 요구한 사항은 다음과 같다. 홍보용 배너를 제작해서 극장에 배치해줄 것. 홍보부스를 설치해줄 것. 감독과 배우를 초청할 것. 영화제 데일리에 4번의 광고를 내줄 것. 영화제쪽은 내부 논의를 거쳐 이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했었다. 이에 대해 미로비젼쪽은 “그때만 해도 프린트 수급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영화제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무리한 욕심으로 끌고 가게 됐다. 어느 정도 선에서 정리를 했어야 했는데, 본의 아니게 관객에게 피해를 끼치고, 영화제 운영진을 난처하게 만든 점은 인정한다.”
한 국내 수입사 관계자는 이번 일이“국내 수입사들 사이에서 관행으로 굳어진 시스템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라고 말했다. 관행은 “해외 마켓에서 돈을 먼저 주고 영화를 구입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아파트를 살 때 중도금 내는 거랑 비슷하다. 마켓에서 구입할 영화를 찾은 뒤 일단 ‘딜메모’라는 형식으로 가계약을 한다. 그 뒤에 수입사는 다시 국내의 투자사나 배급사, 그리고 IPTV나 다운로드 업체 등과 계약하는데, 이때 받은 선급금으로 판권금액의 일부 혹은 전부를 지급하는 것이다.” 만약 이 과정에서 국내 업체와의 계약 가능성이 없거나, 계약이 성사돼 돈을 받았지만 이미 약속한 판권금액에 못 미칠 경우, 혹은 국내 모니터 관객의 반응상 수익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할 때 수입사는 더 큰 출혈을 막고자 계약을 파기한다. 말하자면 위기관리차원의 관행인 셈이다. 전략적 차원의 관행이라면 이 관행을 문제 삼을 수 없을 것이다. 단, 계약이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영화제 상영을 약속한데다, 영화제 개막 이후까지 무리하게 상영을 추진하는 행태는 지적할 필요가 있다. 관행을 그저 관행으로 치부하고 무리한 욕심을 부릴 때, 국내 수입사의 신뢰는 떨어지고 영화제는 도깨비시장이 돼버릴 수 있다. 이번 상영취소 소동이 강하게 알리는 경고신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