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0일, 프랑스 영화학자 자크 오몽이 시네마테크 부산을 찾았다. 장맛비가 쏟아진 토요일의 늦은 오후, 극장 입구엔 매진을 알리는 공지가 붙어 있다. 극장은 자크 오몽의 강연을 들으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프랑스의 영화평론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평론가로 활동했고, 파리3대학과 파리사회과학고등원에서 교수를 역임한 자크 오몽은 영화 이미지학의 대가로 불린다. 그는 이번 강연에서 오늘날 영화에서 작가의 의미란 무엇인지, 영화에 대한 사랑은 무엇인지에 대해 긴 이야기를 들려줬다. 강연은 빈센트 미넬리의 <파리의 미국인>을 본 뒤 시작됐다. 자크 오몽의 강연을 요약해 전한다.
반갑습니다. 부산에 오니 영화에 대한 사랑이 물씬 느껴집니다. 방금 보신 빈센트 미넬리 감독의 <파리의 미국인>은 제가 오늘 얘기할 주제와 잘 들어맞는 영화입니다. <파리의 미국인>의 진 켈리(제리 멀리건 역)는 2차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 병사였지만 전쟁이 끝나자 파리와 사랑에 빠져 화가가 됩니다. 영화의 배경은 1951년입니다. 빈센트 미넬리가 영화를 만들었을 당시 예술의 중심지는 파리가 아니라 뉴욕이었습니다. 프랑스 비평가들은 신랄하게 ‘뉴욕이 유럽의 현대미술을 훔쳐갔다’고 얘기했습니다. 1950년대 미국에는 추상표현주의가 도래했는데 그 영향력이 유럽에서 왔다는 겁니다. 영화는 모리스 위트릴로와 같은 상징적인 파리의 화가들을 패러디하고 있습니다.
장면과 장면의 움직임, 그리고 배우의 연기
빈센트 미넬리는 아마추어 화가였습니다. 그렇다고 회화를 위해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색깔, 색깔이 가지고 있는 행복감을 묘사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색의 움직임, 색의 배합, 색의 리듬감을 음악과 함께 효과적으로 사용한 감독입니다. 영화 속 진 켈리의 우스꽝스럽고 형편없는 그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빈센트 미넬리 감독 그 자체, 그가 영화에서 그리고 있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1951년에 <파리의 미국인>이 소개됐을 때 <카이에 뒤 시네마>도 창간됐습니다. <카이에 뒤 시네마>가 무엇보다 좋아한 영화는 미국영화입니다. 영화는 대중을 상대로 한 오락이 강조된 매체입니다. 영화가 만들어진 초창기에 영화의 예술성은 존중되지 못했습니다. 영화는 오락의 기능으로만 간주되었는데, 20세기 초반에 영화평론이 등장하면서 영화의 지적 수준과 예술적 수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처음으로 영화의 지적 가능성을 간파했던 지식인들은 엘리 포르, 벨라 발라즈 같은 1920년대 미학자들이었습니다. 이후 1930년대에는 문학 작가들이 영화의 미학적인 가치를 발견했습니다.
1930년대까지 세계의 지성들은 영화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무엇을 느꼈을까요. 그것은 새로운 세계가 돌아온다는 희망, 인본주의 운동에서 비롯된 감성의 세계와 연관이 있습니다. 사르트르가 표현한 것 중 ‘현실과 같은 상황에 놓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화가 현실과 밀접한 매체이고, 예술적인 가치를 품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동시에 영화는 영원한 움직임의 예술, 기계적인 움직임의 예술입니다. 영화는 목격하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 그리고 영구적이고 기계적인 움직임이 결합해서 탄생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미국영화에는 그러한 움직임이 잘 표현되었습니다. 움직임이라는 건 배우의 연기에 국한된 게 아니라 영화에 표현된 장면과 장면의 움직임까지 포함합니다. <카이에 뒤 시네마>는 할리우드영화가 단지 대중오락의 수단이 아니라 예술적 현상의 한 추세가 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얘기들은 작가주의 탄생 배경과 관계가 있습니다. 작가 논쟁, 즉 작가정책은 영화에서 작가란 과연 누구인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제작자도, 감독도, 기술자도 모두 작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감독과 제작자와 기술자의 역할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습니다.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입니다. 그것이 영화에 예술성을 불어넣어줍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 안에서 예술적인 책임을 졌던 사람은 제작자였지만, 제작자에 대항해 자신의 세계를 펼치기 시작한 영화작가들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존 포드, 하워드 혹스, 앨프리드 히치콕입니다.
‘영화에 있어서 작가란 시나리오에 관한 아이디어를 소유한 자가 아니라 쁠랑(plan, 일반적으로는 ’쇼트’를 의미하는 프랑스어로 통용되나, 쇼트가 기술적 맥락에 따른 용어인 것에 반하여 쁠랑은 영화에서의 공간과 시간의 최소단위라는 미학적 함의를 포함하고 있다. 예컨대 철학자 들뢰즈는 쁠랑에 관하여 말할 때 ‘운동-이미지’라는 영화의 고유한 운동성을 지속시켜주는 단위로 이해한다-편집자)에 관한 아이디어를 소유한 자’라 할 수 있습니다. 쁠랑은 영화적인 아이디어이고, 영화적인 아이디어에 기초해 영화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작가입니다. <카이에 뒤 시네마>는 또 영화의 진정한 창조자는 영화 촬영지에서 결정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카이에 뒤 시네마>가 사랑한 미국 작가 중 대표적인 사람이 히치콕인데, 히치콕은 프랑수아 트뤼포, 장 뤽 고다르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히치콕 이후 <카이에 뒤 시네마>는 독일의 프리츠 랑을 사랑했습니다. 히치콕과 프리츠 랑의 영화는 시나리오상의 허점을 뒤집어엎었습니다. 히치콕과 프리츠 랑은 영화를 생각하는 작가였습니다.
빈센트 미넬리 얘기로 돌아오면, 그는 1950년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상업영화 감독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는 작가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빈센트 미넬리의 영화는 멜로드라마와 코미디 뮤지컬이 대부분입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제작자에 의해 선택되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빈센트 미넬리는 악조건 속에서 자신의 예술성을 드러냈습니다. 제작자에 의해 이야기를 강요당하긴 했지만 쁠랑에 충실한 방법으로 연출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를 작가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쁠랑은 영화에서 어떤 작용을 할까요. 영화는 이미지의 예술이 아니라 쁠랑의 예술입니다. 질 들뢰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쁠랑은 지속 공간의 장치이고 집합체이다.’ 또한 쁠랑은 시간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연성, 우발성과도 관계가 깊습니다. 말하자면 쁠랑은 우발적인 시간과 움직임을 잡아내는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쁠랑의 중요성은 장면의 지속성에 있다
영화의 예술성이 확고해지면서 다국적인 영화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시네필의 태도와 관점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시네필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애초 영화가 발명됐을 때 시네필은 영화를 감상하는 사람이었고, 영화를 무조건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영화 예술성이 부각되면서 시네필은 나쁜 영화와 좋은 영화를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됐습니다. 거기서 작가의 아이디어가 인정받게 됩니다.
쁠랑은 영화적인 것이며, 영화적인 것은 영화 촬영지에서 결정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서 영화와 현실과의 조우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실을 포착하는 과정에서 영화와 현실은 조우합니다. 영화 작업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진실이 바로 영화와 현실과의 조우입니다. 최근에는 아시아영화에서 그런 장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구로사와 기요시, 허우샤오시엔, 왕가위, 전수일, 홍상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등 현대 작가들의 영화를 살펴보면 쁠랑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쁠랑의 중요성은 단지 장면의 연속이 아니라 장면의 지속성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지속 공간의 집합체, 그것이 쁠랑의 예술성입니다.
디지털영화의 등장으로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진정한 영화가 죽을 수도 있다는 비관적인 이론이 1980년대에 등장했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영화를 봐야 합니다.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생동감과 예술성, 그 모든 것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영화가 산업예술이긴 하지만 <카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들이 주창했듯 작가정책은 영원할 것입니다. 작가정책이 영화의 예술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믿습니다. 늦게까지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강의를 준비하면서 오슨 웰스가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오슨 웰스가 어느 작은 도시의 영화관에서 강연을 하게 됐습니다. 도시는 작았지만 영화관은 굉장히 컸습니다. 그런데 강연 참가자는 5명뿐이었습니다. 오슨 웰스의 불안감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오슨 웰스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고, 특유의 묵직한 목소리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참석한 관객 수는 적지만 내가 다수니 괜찮다.”(혼자서 다 감당할 수 있다는 뜻) 오슨 웰스가 느꼈을 불안감을 없애준 시네마테크 부산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