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온 프랑스영화 두편은 21세기에 나이가 든 사람이라는 사실이 주는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은 시냇물>(les petits ruisseaux)은 만화가 파스칼 라바테가 자신의 인기 만화 중 하나를 영화로 각색한 작품이다. 주인공 에밀은 정년 퇴직한 홀아비인데, 절친한 친구인 에드몽과 낚시를 하며 한가로운 오후를 소일한다. 한데 에드몽은 송어낚시만 하는 친구가 아니다. 그는 여자에 대해서도 남다른 정열을 품고 있으니까. 에드몽이 여자를 직접 꼬드기지 않을 때는 그림으로 그린다. 에드몽의 전공? 야한 잡지에 나오는 여자 사진을 그대로 보고 그리기다. 물론 중요한 부분에 양털 한 뭉치를 그려넣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이런 친구 에드몽이 세상을 떠나자 주인공 에밀은 물고기를 벗삼으며 홀로 인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 에밀은 길을 나선다. 마리화나와 로큰롤, 예쁜 여자들이 가득한 새로운 인생을 찾아서!
베를린에서 소개됐던 <마무스>(Mammuth)는 브라운관에서 활동하던 다재다능한 두 괴짜, 구스타브 데 케르벤과 브누아 델레핀느가 만든 새 영화다. <마무스>는 필라르도스라는 어느 평범한 서민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그는 이 일 저 일 안 해본 일이 없고, 자신의 의무를 한번도 저버린 적이 없다. 한데 정년퇴직할 나이가 된 그는 앞으로 연금을 타려면 아직 서류 몇개가 부족하다는 걸 발견한다. 그러자 그는 1970년대형 근사한 오토바이 한대를 집어 타고 잃어버린 몇 개월치 연금을 받는 데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이내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고 만다. 여행을 한다는 사실 자체, 그리고 여행길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주는 기쁨이 더 크니까.
등장인물이 한 장소에 머물러 있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이 가벼운 로드무비 형식의 영화 두편에는 공통점이 있다. 정년퇴직할 나이의 인물을 통해 일종의 프렌치형 ‘생의 즐거움’을 환기시켜준다는 점에서 말이다. <작은 시냇물>과 <마무스>에서 프랑스는 포근한 바람과 신선한 포도주와 차갑지 않은 아가씨들의 눈빛이 있는 정겨운 나라가 된다.
두 영화에는 신(神) 같은 배우 두명이 출연한다. 에밀을 연기하는 배우는 다니엘 프레보스트다. 그는 카페 극장 출신 배우로 70~80년대 코미디물에 출연하던 훌륭한 인기배우다. 71살에 완전히 깡마른 체구를 한 프레보스트는 <작은 시냇물>에서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가지처럼 마냥 홀가분하기만 하다. <마무스>는 드파르디외다. 트뤼포에서 피알라를 거쳐 레네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영화의 거장이란 거장은 죄다 집어삼킨 식인귀 배우 드파르디외(좀 작은 거장들도 삼키긴 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선 쉿…!). 그는 프랑스인의 좋지 않은 기분과 웃음과 사랑과, 우리의 술 포도주로 물을 주며 키운 국민의 나무 바오밥으로 여전히 건장하게 지탱하고 서 있다. 프레보스트와는 정반대로 62살에 여느 때보다도 육중해진 체구를 가진 드파르디외는 <마무스>에서 국도를 타고 어디든 발길 닿는 대로 떠다니는 거대한 비누거품이 된다.
두 작품이 나오는 현 시점은 유럽 및 주변 선진국 신세대들이 그들의 부모님처럼 넉넉한 연금을 받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리라는 걸 이미 감지하고 있는 시점이다. 이런 면에서 영화 <작은 시냇물>과 <마무스>는 역사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두 작품은 시대를 앞서가는 증언이다. 나이 먹었다는 사실 하나가 부조리한 인생사 속에서 광란하던 존재들에게 마지막 피신처가 되어주던 어떤 시대에 대한 추억. 인생을 마감하는 시점에서조차 삶을 즐길 수 있었던 한 시대에 대한, 다가올 우리의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