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3일 새벽, 정우정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프로그래머가 한통의 메일을 보냈다. 이날 오후 2시엔 제6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기자회견이 예정되어 있었다. 영화제 상영작을 발표하는 큰 행사를 앞두고 정 프로그래머가 다급히 메일을 보낸 까닭은 도대체 뭘까.
그는 지난 5개월 동안 영화제 사무국 안에서 ‘유령 스탭’이었다. 출근도 하고 월급도 나왔지만, 프로그래머로서의 업무는 주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2월3일 조성우 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부터 “1년간 쉬었다가 다시 오라”는 말을 들었지만 받아들이지 않은 결과다.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로부터 지난 3년 동안 해외출장비를 이중으로 받았다는 것과 DMZ다큐멘터리영화제 프로그래머직을 겸직했다는 것이 사직 권고 이유였다. “지난해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에서 받은 돈은 영어자막 검수비로 받은 것이며, DMZ다큐멘터리영화제 프로그래머직은 이미 조성우 집행위원장에게 허락을 받은 것이라 이러한 강요를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정 프로그래머의 해명이다.
4월19일 조성우 집행위원장으로부터 “비상근 프로그래머로 (계약 내용을) 전환하고 올해까지만 일하는 것을 수용하지 않으면 함께 일할 수 없다”는 뜻을 전달받았으나 정 프로그래머는 “부당한 압력이라고 판단해 거부했고” 결국 “영화제 준비 업무에서 배제됐다”. 정 프로그래머는 “5월 말부터 영화제쪽이 내 업무를 대신할 객원 프로그래머를 고용했다”면서 “월급을 주면서 일을 못하게 하고 새로운 프로그래머를 고용해서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그는 7월13일 기자회견에 참석은 했지만 불청객이나 다름없었다.
이에 대해 조성우 집행위원장은 “정 프로그래머는 동의를 구하고 얻었다고 했지만 이는 해석의 문제”라면서 “가볍게 도와준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는데 타 영화제의 공식 프로그래머로 활동을 했고, 이는 상근직 규정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조 집행위원장은 “처음엔 해고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영화제가 얼마 남지 않았고 본인의 경제적 사정 등도 고려해서 업무 조정을 하라고 했다. 그런데 이를 정 프로그래머가 따르지 않았다”고 밝혔다. 비상근직 전환 요구에 대해서도 “본인이 DMZ다큐멘터리영화제 프로그래머 일을 계속 하고 싶어 해서 그렇다면 비상근으로 바꾸라”고 한 것이라며 “대화를 할 때마다 매번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을 전제로 내걸었다”고 답변했다. 자신은 조직 운영에 있어 집행위원장으로서 필요한 조치를 취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조성우 집행위원장은 “정 프로그래머가 감정적으로 이 사안을 받아들여 규정을 음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 프로그래머는 현재 법적 자문을 구하고 있는 중이다. 바깥에 선 이들로선 저간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니 시시비비를 가릴 입장은 아니다. 올해 지방선거 이후 시장이 바뀌면서 제천국제영화제 폐지설이 적지 않게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이러한 갈등을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누가 잘했고, 누가 못했는가. 책임 소재 공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갈등이 애초에 왜 발생했는가 하는 점이다. 전에 영화제에서 일한 적 있는 한 영화인은 “국내 영화제들의 경우 대개 정관을 갖고 있긴 하나 이것이 구체적이고 내부 규정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주요 스탭들의 역할, 업무 조건은 물론이고 규정을 위반했을 때 어떻게 책임을 묻겠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이는 군소영화제뿐만 아니라 대규모 국제영화제 또한 마찬가지”라면서 “이 경우 분쟁은 끊임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한다. 한국은 알다시피 영화제 천국이다. 그러나 세심한 내부 규정에 의거해 조직을 운영하는 영화제는 거의 없다. 특정한 누군가의 영화제가 아니라 모두의 영화제라면 함께 고민해볼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