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의 각 캐릭터들의 성대모사가 가능하답니다.” 배우 지망생이 아니다. 박혜진씨는 영화사 미로비젼에서 한국영화를 해외에 알리는 해외 판매를 담당하는 전문 세일즈우먼이다. 입사 뒤 맡은 가장 큰 프로젝트인 <하녀>는 올 한해, 그녀의 머릿속을 가장 어지럽힌 존재이자 뿌듯하게 해준 존재다. “선배에게 받은 ‘내 영화는 무조건 사랑해야 한다’는 조언을 철석같이 믿어요. 하루 세번씩 같은 영화를 보게 되면 장점만 기억하게 되죠. 그게 제 세일즈의 비결이에요.” 지난 7개월 사이, 그녀는 <하녀>를 비롯해 <집행자> <걸프렌즈> <킹콩을 들다>의 해외 세일즈와 영화제 출품을 담당했다. 아니, 이 작품들을 사랑하는 데 그녀의 서른살 일상을 아낌없이 투자했다. 미로비젼에선 아직 1년이 채 안된 신입사원이지만, 그녀는 영화제를 통해 실력을 쌓아온 경력자다. “일하다 보니 이 분야가 고리처럼 연결돼 있더라고요. 앞으로 이 고리를 확장해 한국영화 해외판매 실적을 높이는 게 제 목표랍니다.” 늦은 저녁, 인터뷰 뒤 업무가 남았다며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세계 각 곳에 그녀가 판매한 영화들이 무수히 걸릴 날이 머지않았음이 느껴진다.
-해외사업팀에서 맡은 업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한국영화 해외 세일즈를 담당한다. 해외 판매뿐만 아니라 해외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 관리하는 일도 병행한다. 미로비젼에 입사한 지 7개월밖에 되지 않아 해외 세일즈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미로비젼에서의 경력만 보면 그렇다. 하지만 해외 관련 업무에 꽤 경력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의 3인 3색 프로젝트와 홍상수 감독전 등의 해외 배급 업무를 3년간 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마켓에서 해외 배급일을 했으니 이래저래 5년 정도 이 분야에서 일한 셈이다. 부산영화제 끝나고 다음 행보를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미로비젼에서 해외 세일즈 분야의 사람을 찾아 기회가 닿았다.
-영화제에서 관련 분야의 일을 한 것이 입사에 도움이 됐겠다. =고백하자면 대학 졸업 때도 미로비젼에 지원했었다. (웃음) 학교 때 아르바이트로 방송국 영상 수입일이나 영화제 일을 조금 한 게 관련 분야 경력의 전부였고, 그래서인지 그땐 서류전형도 통과 못했다. 그런데 이번엔 영화제 경력이 입사에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줬다. 공채사원을 팀에 배치하는 대기업의 전형과 달리 중소업체들은 바로 실무에 투입될 수 있는 경험자를 선호한다. 보통 영화사 경력자를 선호하지만, 영화제에서의 경험도 인정된다. 영화제 스탭 참여는 영화사보다 문턱이 낮으니, 이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그렇게 경험을 쌓는 것도 충분히 고려해볼 만하다. 내 경우, 경력을 인정받아 입사하자마자 2개월 만에 마켓 업무에 투입됐다. 올해만 마켓 세곳과 칸영화제까지 참석했다.
-해외 세일즈를 하는 데 꼭 필요한 자격은 무엇인가. =적극적인 성격이 최우선이다. 해외 세일즈도 결국 영업이다. 마켓에서 바이어가 <하녀>만 관심있어 하더라도 회사의 다른 작품까지 소개하고 권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 대표님(채희승)이 존경스럽다. 아마 야한 영화 상영이 힘든 사막의 나라에도 에로영화를 파실 거다. (웃음) 나 역시 배워야 할 부분이다. 물론 영어는 기본이다. 그러나 겁먹을 필요는 없다. 유학파나 현지인처럼 거창한 영어를 하지 않더라도 이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분들이 많다.
-이 일의 성과와 보람은 무엇인가. =해외 세일즈는 임금 수준이 높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야근을 해야 하는 3D 업종이다. (웃음) 그렇지만 내가 맡은 영화를 전략적으로 포장해서 그 작품이 해외에서 개봉하거나, 영화제에서 상영됐을 때는 말할 수 없이 기쁘다. 최근엔 담당한 <집행자>가 상하이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얻었다. 물론 영화가 좋은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이럴 땐 해외 업무를 하는 우리가 각 영화제의 특성과 작품을 잘 파악해서 적절한 영화제에 소개한 것이 도움이 됐겠다 싶어 마음이 뿌듯하다.
-스스로 아직은 시작 단계라고 했다. 해외 세일즈맨으로서의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5~6년 전만 해도 해외 바이어들 사이에서 한국영화는 보지 않고도 사가는 핫 아이템이었다. 안타깝지만 지금은 봐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국영화산업이 침체기를 겪으면서 해외 세일즈 분야도 상황이 많이 어려워졌다. 다시 예전의 분위기가 회복되는 데 나 역시 전문가로서 일조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