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담컨대 나는 이 책에 실린 모든 글을 두번 이상 읽었다. 내 담당 원고가 아니었음에도. 그래서 <씨네21>에 연재되었던 ‘나의 친구 그의 영화’가 단행본으로 엮여 나왔을 때, 가장 먼저 새로 추가된 글이 있는지를 살펴보았고, 그게 ‘서문’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새침하게 “흥! 칫! 핏!” 하고는, 몇 꼭지만 산책하듯 천천히 훑어볼 생각이었다. 책을 펴기 전까지는 그랬다.
김연수와 김중혁(참고로 이름은 가나다순이다)은 오래된 친구이자 소설가들이다. 얼굴로나 글발로나 유명세로나 우위를 가를 수 없는 두 사람인데, 서로를 너무 잘 알다보니 이 책에 실린 글의 태반은 상대의 과거를 폭로하거나 자폭하는 식의 유머로 점철되어 있다. 김연수가 <씨네21> 신입사원 공채에 지원했다 떨어진 사연을 말하면 그에 질세라 바로 다음 회에 김중혁이 <키노> 입사시험을 보고 떨어진 이야기(정확히는 아무도 뽑지 않은 이야기)로 응수한다. 원고 매수를 쉽게 채워보겠다는 일념에 김중혁이 그래프로 보는 영화라는 알쏭달쏭하고 그림투성이인 원고를 보내오면, 바로 다음 장에서 김연수가 ‘원고 분량을 줄일 속셈으로, 게다가 엉성하게’라며 그래프의 본질을 냅다 지적질한다. 하지만 시작은 실로 럭셔리해, 이 ‘대꾸 에세이’의 첫회에서 김연수는 “스페인 말라가에 갔다”라며 읽는 이의 염장을 지르고, 그 답신에서 김중혁은 “스웨덴 스톡홀름에 왔다”고 우아하게 말문을 열었더랬다(그 대목은 다시 읽어도 부러움에 숨통이 막힌다).
이 ‘대꾸 에세이’의 가장 큰 매력은… 생각 깊고 글 잘 쓰는 두 남자가 주고받는 대화의 핑퐁게임(혹은 시소게임 혹은 싸다귀 날리기)에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이 칼럼이 연재되었던 2009년, 뉴스에서 보고 싶지 않았던 뉴스를 너무 봐야 했던 일이 생각나시는지? 이 책에는 모든 원고가 연재된 날짜가 함께 실려 있다. 용산참사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가 <그랜 토리노>와 <마더>와 나란히 이야기된다. <걸어도 걸어도>처럼 영화평론가보다는 소설가가 더 풍부한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는 작품의 경우, 이들의 대화는 빛을 발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두 사람이 부러워진다. 친구와 이렇게 글로 이야기를 나누고(친구에게 140자 이상으로 글을 써본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친구의 글을 읽고 과거를 회상하고, 그 회상에서 웃음을 길어올리고. 심지어 그 글로 돈도 번다! 이런 게 해피엔딩이 아니라면 무엇이 해피엔딩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