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칸영화제는 작품 선정에서 ‘특별한 예외’를 허용했다. TV시리즈로 제작된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카를로스>(Carlos)를 비경쟁부문에서 상영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심지어 5시간30분짜리 TV버전 그대로 말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칸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바로 그날 저녁에 프랑스 채널 <카날 플러스>에서 <카를로스>의 첫 번째 에피소드가 상영되었다는 사실이다. 영화적 형식의 전통과 자존심을 중요시하는 칸영화제로서는 그야말로 특별한 예외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카를로스>는 2시간30분 극장 버전 그대로 오는 7월7일 프랑스 전역에서 개봉한다. 결국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TV 포맷에도 영화 포맷에도 들어맞지 않는 제3의 포맷을 통해 TV와 영화라는 서로 다른 매체에 동시에 발을 담그는 데 성공한 셈이다.
<카를로스>는 영화 <자칼의 날>로도 유명한 베네수엘라 출신의 실존 테러리스트 카를로스 자칼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카를로스> 개봉을 앞두고 ‘포룸 데 이마주’(Forum des images: 파리 중심에 위치한 시네마테크형의 문화공간)에서 주관한 아사야스 감독의 마스터 클래스에 참석했다. 이날 저녁 아사야스는 록음악, 그림, 문학에 몰두했던 유년 시절, 뒤늦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영화, 실제 시나리오작가로 활동했던 친아버지와의 관계, <슈퍼맨>에 편집보조로 참여했던 첫 번째 영화제작 경험, <카이에 뒤 시네마> 활동 시절, 80년대 처음으로 (일본영화를 제외한) 아시아영화를 발견했을 당시의 흥분 등을 떠올리며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영화관에 대해 이야기했다.
록음악, 다양한 문화와의 결합을 제외한다면 아사야스의 영화를 얘기할 수 없다. <카를로스> 또한 그같은 아사야스 영화의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이번 작업을 통해서 ‘픽션’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했다고 토로한다. 영화의 모든 에피소드들은 직접 카를로스와 함께 테러 작전에 참여했던 실존 인물들에 의해 정교하게 재구성되었는데, 이 작업 과정에서 그는 “실존하는 인물들이 과거에 직접 겪은 일을 시나리오로 쓴다는 것. 그리고 그 역사적 사건들을 이미지로 똑같이 재현한다는 것. 과연 이것은 드라마인가 현실인가”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고 한다. 오늘날까지도 고전적인 ‘문학’의 영향을 영화에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보수적인 프랑스영화계에서, TV와 영화 사이의 줄다리기를 보여주는 <카를로스>의 개봉에 관객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TV에서만 방영되고 사라질 순 없었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인터뷰
-왜 <카를로스>에 대해 TV라는 매체로 접근하게 되었나. =카를로스라는 인물을 제대로 재구성해내려면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다른 나라의 상황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쨌든 프랑스의 고전적인 영화제작 시스템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을 응축했을 때 표현해낼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의도하에서는 상황에 따라 인물들이 각기 다른 언어로 소통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매체가 필요하기도 했다(프랑스 영화제작 시스템은 자국 영화로 인증받으려면 주요 언어가 프랑스어여야 한다).
-그렇다면 왜 결국 극장 버전을 제작하게 된 건가. =제작 시작 전부터 얘기된 사항이었다. 작품이 TV에서만 방영되고 사라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카를로스>는 TV의 포맷에도 영화의 포맷에도 쏙 들어가진 않는다. 두 매체를 오가면서 최대한의 자유를 누렸다고 생각한다.
-사실 재현에 대해 강조했는데 시나리오 작업은 어떻게 했나. =물론 촬영 전에 시나리오를 썼다. 하지만 작업 현장에서는 자연스럽게 대본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역사적 증언으로 재구성되는 역사적 사실들이 시나리오의 ‘이야기’를 뛰어넘는 또 다른 차원의 영화언어, 그리고 영화적 인물 자체를 스스로 생성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소개될 예정인지 혹시 알고 있나. =아쉽게도 아직까지 정확히 결정된 사항은 없다. 이 기사를 계기로 아마도?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