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이맘때 나는 영화 현장에 있었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제작부 막내라는 지위로 말이다. 주차 관리, 촬영지 및 식당 섭외, 부식 수급처럼 ‘시다바리’에 해당하는 일만 했지만 내 기여도 적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상당수 장면이 연출부 민범이와 헌팅을 다니며 찾아낸 공간에서 촬영됐고, 배우와 스탭들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제작부는 무조건 뛰어다녀야 한다”는 근대조국건설산업역군식 조언에 따라 비지땀을 쏟아냈던(촬영을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고 중퇴한 건 부끄러운 기억이다) 6년 전 기억이 문득 떠오른 건 이번주 독자사연 때문이다. <파괴된 사나이>에 연출부 막내로 참여했던 김원석씨의 “영화가 별점 2개를 받았다고 해서 스탭들도 별점 2개는 아니”라는 말은 한때 스탭으로서 느꼈던 나름의 보람을 되새기게 했다.
뻔한 말이지만 영화에서도 중요한 건 사람이다. 스크린 안 스타 배우나 스크린 속 세계를 연출한 감독도 비중 높은 사람들이지만, 조·단역 배우와 스탭들의 영화에 대한 기여도 또한 무시해서는 안된다. 제작부 막내조차 한편의 영화에 공헌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영화계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잘 대해주고 좋은 인재로 육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2010년 한국영화산업이 맞닥뜨리고 있는 화두를 10개의 질문으로 정리한 이번주 특집기사를 보니 영화와 더불어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지금 충무로는 좋은 환경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제작한 영화가 흥행해도 돈을 벌지 못하는데다 웬만하면 빚까지 져가면서 제작비를 조달해야 하며 궁여지책으로 만든 중·저예산영화는 더욱 흥행시키기 어렵다는 제작사의 아우성을 듣고 있노라면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영화를 업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지쳐갈 것이고 결국엔 포기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이에 대해 명쾌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점을 죄송스럽게 생각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사안은 영화계의 각 부문이 함께 고민해야 할 거리라는 식으로 변명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괜스레 우울해지셨다면 영화와 드라마틱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세편의 기획기사를 읽어보시라. 영화를 매개로 십수년간 인연을 맺어온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의 선생님과 제자들, 웬만한 한국인보다 한국 독립영화를 아끼는 일본인 야마가미 데쓰루, 일본영화의 전성기를 헤쳐온 대배우 나카다이 다쓰야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각별한 파트너 노가미 데루요에 관한 글은 스크린 안과 밖에서 생겨나는 훈훈한 휴먼 스토리에 해당한다. 영화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때때로 영화보다 훨씬 아름답고 드라마틱하다는 진실을 일깨울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PS. ‘예술판독기’를 연재 중인 반이정씨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를 당해 당분간 글을 실을 수 없게 됐다. 반이정씨의 쾌유를 진심으로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