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 J. 커틀러 감독의 공적이 숨겨졌던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의 집무실을 공개하는 데 그친 건 아닌가 보다. 윈투어의 전기 다큐멘터리 <셉템버 이슈>의 성공 이후 할리우드가 앞다투어 셀러브리티들의 전기 다큐멘터리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으니 말이다. 골칫덩어리 제작자로 명성이 높은 로버트 에반스를 비롯해 <플레이보이>의 창업주 휴 헤프너, 타락한 복싱 챔피언 마이크 타이슨, 섹스 스캔들로 풍파를 일으킨 뉴욕 주지사 엘리엇 스피처 등의 인물이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공개를 앞두고 있다.
아방궁을 공개하기까지 감독 애를 먹였던 안나 윈투어와 달리 최근 셀러브리티들은 자신이 다큐멘터리의 대상이 되는데 우호적이다. 82살의 헤어스타일리스트 비달 사순은 자신을 그린 다큐멘터리 <비달 사순 더 무비>가 “사람들이 나를 새롭게 봐주는 기회를 마련해줬다”며 아낌없는 지원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들 대부분이 인생에 굴곡을 가진 만큼 자신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실추한 이미지를 만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그룹 도어스를 그린 톰 디칠로 감독의 다큐멘터리 <웬 유 아 스트레인지>는 짐 모리슨에 관한 긍정적인 해석을 하며, 리키 스턴과 애니 선드버그 감독이 연출한 <조안 리버스: 어 피스 오브 워크>는 수많은 성형수술로 가십지의 단골 대상이자 놀림감이었지만 70살이 넘은 나이에도 꿋꿋이 살아가는 조안 리버스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물론 다큐멘터리가 진실과 실제를 얼마나 전해줄지는 미지수다. 대상이 된 인물들이 영화 제작 과정에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는 걸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리버스의 전기 다큐를 연출한 리키 스턴은 “가편집본을 본 리버스에게서 영화의 고칠 점에 관련된 장장 3쪽의 이메일을 받아야 했다”고 고백했다. 또 <웬 유 아 스트레인지>는 도를 넘어선 칭찬 일색의 어조 때문에 평론가들에게 뭇매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몇몇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셀러브리티들의 생활을 공개하는 다큐멘터리 제작은 계속될 전망이다. 다큐멘터리 <타이슨>을 연출한 제임스 토백 감독은 “사람들은 진실과 실제를 늘 궁금해 한다. 전기 다큐멘터리야말로 이러한 욕구의 자연스러운 결과다”라며 “유명인의 삶을 그린 전기 다큐멘터리가 TV 리얼리티 쇼를 보는 것만큼 흥미를 돋운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