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의 땅 북한에 예외적으로 방북하는 남쪽 거물 인사라면 누구건 인상적인 추억거리를 들고 온다. 1998년 정주영 명예회장, 2000년 김대중 대통령, 2002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2007년 노무현 대통령, 2009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동일한 초대형 풍경화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건 북한 명승지를 배경으로 여행객이 촬영하는 이른바 ‘인증 사진’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것이다. 명승지 사진이 ‘거기 있었음’의 확인에 불과하다면, 고위 인사의 병풍이 되는 대형 풍경화는 북한 영토의 사생(寫生)이 아닌 북한 ‘체제’를 표상하기 때문이다. 평양 백화원 초대소에 설치된 그림은 <총석정의 파도>다. 총석정은 관동팔경 중 으뜸으로 조선 화단의 대가 단원과 겸재도 대표작 목록에 남길 만큼 절경으로 꼽히며, 1962년에는 한국은행권 50원 지폐 도안에도 채택된 바 있다. 단원 겸재 50원 지폐가 재현한 총석정의 관전 포인트는 정중앙에 총립한 석주다. 육각형 현무암 돌기둥이야말로 총석정 비경의 전부이므로. 반면 백화원 총석정 그림은 깎아지른 석주를 격동하는 파도가 밀어냈다. 정권 옹립이 목표인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학은 호전적인 투사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김일성 주석 체제의 주체미술을 연상하라. 그러나 후계자 김정일은 같은 화가가 그린 또 다른 파도그림 <해금강의 파도>를 두고 “잔잔한 바다보다 사나운 바다가 용기를 주어 좋고, 대형그림의 파도는 조선의 기상”이라며 ‘대걸작’이라고 호평했다. 주체미술의 인식변화이자 세대교체인 것이다. 영웅 전사의 이미지는 가고 자연의 권능을 빌려 강성대국과 그의 리더십을 대변하게 한 것이다.
미 여기자 억류 사태로 2009년 전직 미 대통령 클린턴이 방북해 협상에 성공했을 때, 그것의 가시적 성과는 <총석정의 파도>를 배경으로 체구가 상이한 두 고위 정치인의 기념사진으로 남았다. 냉전이 붕괴된 시대에도 생존하는 전체주의 예술이 외신의 시각에선 각별했던가 보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클린턴 방북 직후 ‘왜 독재자들은 키치를 사랑할까?’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총석정의 파도>는 키치일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표현의 무절제, 실제 이상의 과잉 감정, 상투적 묘법, 정치적 복무, 초대형 사이즈 등은 엄연한 키치 요소이지만, 대중 야합을 위한 공급 과잉이나 싸구려 재료 사용과 같은 키치의 기본 속성과는 또 거리가 멀다. 더구나 아무리 전체주의 국가라지만 일국의 대표 화가인 인민화가로, 파도 그림의 대가 김성근의 대작 아닌가. 이 웅장한 파도 풍경은 작위적 숭고함을 분명히 강요한다. 낭만주의 시대가 성취한 대자연의 무한성을 모욕하고 훼손했다. 그런데 <총석정의 파도>는 미학적 감상 또는 비평적 대상이 애당초 아닌 듯하다. 반대로 관람 주체를 대상화시킨다. ‘스스로 숭고한’ 이 그림은 체제 수호조차 위태로운 후진국의 억지 자기과시이다. 그러나 상대국 국빈들이 스스럼없이 그림 앞에서 ‘그림의 요소’로 동참하는 건 재밌다. 이건 외교적 예우의 문제일 수 있지만, 그들의 미학적 취향까지 양보한 건 아닌 듯하다. 엉터리 시골 그림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해주는 떠돌이 사진가의 시대가 있었다. 그것과 유사한 논리로 이 그림은 상대국 귀빈을 웅장한 풍경 앞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관광객처럼 주변화시킨다. <총석정의 파도>가 진정 완성되는 순간은 내빈과 김정일이 정중앙에 위치해 촬영을 위한 채비를 마쳤을 때다. 즉 실물 감상이 아닌 ‘인사들이 포함된 기념사진’으로 남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ps. 당신이 국빈으로 평양 백화원에 초대받은 고급 취향의 소유자라 치자. <총석정의 파도> 기념촬영을 ‘선택’해도 된다면, 거부할 수 있을까? 백이면 백 힘들 것이다. 그것이 좋아서? 아니겠지. 그것이 키치의 권능이다. 키치가 전체주의 국가 독재자의 전유물이란 건 분명 오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