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처, 오후의 정사>라는 괴이하지만 추정 가능한 제목으로 영화가 시작되면 화면에는 일본 영화사 닛카쓰의 로고가 자랑스럽게 뜨며 이 영화의 태생이 밝혀진다. 닛카쓰의 저 유명한 로망포르노의 세계. 단지는 여기서 항아리가 아니라 아파트 ‘단지’다. 이 아파트에 살며 결혼 뒤 유산한 경험이 있는 키요카(다카오 사키코)는 겉으로는 남편과 단란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딘가 생활 속에서 허전함을 느끼는 것 같다. 남편은 일 때문에 자주 늦게 들어오고 낮시간은 대부분 혼자 지내며 조금 무료한 오후에는 폭력과 환상으로 얼룩진 과격한 정사를 혼자 공상한다. 그때 한 남자가 찾아온다. 아파트 주민회의에 참석한 날 우연히 만났고 그 뒤 집을 방문하게 된 정수기 판매원 텟페이(미우라 마사키). 키요카는 그와 별안간 정사의 격정에 빠진다.
아무나 반기는 집안의 여자와 싱크대를 고치러 와서는 정사만 벌이고 가는 근육질의 남자라는 설정은 포르노그래피의 설정 중에서도 고전이다. <단지처, 오후의 정사>는 그 포르노그래피의 전통(?)을 조용한 아파트에 사는 젊고 정숙한 여인의 환상으로 조금 바꿔 되풀이한다. 물론이다. 저예산 안에서 정해진 정사장면의 횟수와 적당히 조정된 노출 수위와 호감가는 몸매의 남녀 주인공과 최소한의 이야기만 지켜낸다면, 나머지는 감독이 하고 싶은 대로 해볼 수 있었다는 닛카쓰 로망포르노의 명성은 유명하다. 일본의 몇몇 재능있는 감독들이 그 과정을 거쳐 새로운 세계로 진입했고 닛카쓰의 로망포르노는 그로써 유명해졌다. 그렇다면, <단지처, 오후의 정사>에도 그런 삐뚤어진 에너지의 창작력이 있는가. 그건 잘 모르겠다. 스토리는 그냥 흘러가는 것이고 정사장면은 반드시 때가 되어야만 약속처럼 등장하는 것이라는 고전적 포르노그래피 보기의 경험을 떠올리게는 한다. <벚꽃동산>으로 알려져 있는 나카하라 슌이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