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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영화 아버지 제임스 웨일, 그 구겨진 인생과 영화
2001-12-19

어떤 괴물감독에의 기억

● 그것은 어쩌면 잔혹한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1930년대 유니버설에서 만든 일련의 괴물영화들은 그것을 만든 사람들에게 평생을 짊어지고 나아가야 할 영광과 저주의 족쇄를 함께 채워주었다. 드라큘라 역의 벨라 루고시나 프랑켄슈타인 역의 보리스 카를로프는 무성영화시대부터 활약하던 중견배우들이었지만 이후로는 평생을 드라큘라 망토와 흉칙한 괴물의 분장을 하고 살아야 했다(보리스 카를로프가 1931년 당시 이미 81편의 영화에 출연했었고 심지어 멜로 드라마에도 출연했다는 사실이 믿어지는가?).

괴물영화 전문감독이라는 명성은 영국 출신의 젊은 감독 제임스 웨일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연극 연출가 겸 무대 디자이너로 명성을 쌓은 제임스 웨일은 프랑켄슈타인을 만든 1931년 전까지만 해도 전쟁영화 전문으로 헐리우드에 정평이 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할리우드에 수입된 계기가 바로 영국에서 만든 전쟁영화 <여행의 끝>(Journey’s End, 1930)의 리메이크 때문이었고, 잇따라 만든 <지옥의 천사>(Hell’s Angel, 1931)와 <애수>(1931, 비비안 리의 1940년작 애수는 바로 제임스 웨일의 이 작품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모두가 전쟁영화였던 것. 전쟁영화 전문감독이라는 달갑지 않은 수식어를 떼어내야겠다고 생각한 제임스 웨일은 당시 프랑스 출신의 로버트 플로리가 참여했던 프랑켄슈타인의 새로운 감독직책을 수락한다. 그러나 바로 이 운명의 영화 이후 <쇼 보트>(Show Boat, 1936) 같은 뮤지컬이나 <지난 밤을 기억하세요?>(Remember Last Night?, 1935) 같은 스크루볼 코미디를 만들었을 때조차, 제임스 웨일은 ‘괴물들의 창조주’라는 편견의 형틀에서 내려놓아 진 적이 없었다.

도플갱어 같은 감독과 배우

제임스 웨일의 일대기를 다룬 <갓 앤 몬스터>는 운좋게도 오스카 각본상을 탄 빌 콘돈의 뛰어난 시나리오로부터 시작된다. 극중에서 게이 감독인 조지 쿠커를 오랜만에 만난 제임스 웨일이 ‘그는 공주는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여왕들만 만났죠’라는 너스레를 떠는 장면이 있다. 사실 여왕(queen)이 게이들을 일컫는 속어이니 제임스 웨일은 감독으로서도 남자애인들을 사이에 두고도 경쟁관계를 벌였던 조지 쿠커가 게이라는 사실을 비꼰 것. 위트 넘치는 대사와 면면에 밴 은유의 긴장감이 인상적인 균형을 이루는 각본은 제임스 웨일의 영화들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여기에 영국 배우 이안 매켈런은 제임스 웨일의 내면에 화룡점정의 연기를 선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제임스 웨일과 같은 북부 영국 출신의 배우이자 일찌감치 게이임을 선언한 셰익스피어극 전문배우 출신이여서일까?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이방인이라는 입장을 체화한 이 두 도플갱어 같은 감독- 배우는 시공간의 간격을 넘어 한때 신이자 괴물이었던 한 감독의 생애에 완벽한 합치점에 도달하면서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제임스 웨일이 1930년대 영화를 만들 당시 할리우드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에 끼인 대공황의 암흑기였다. 영화사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호황을 누렸고 그중에서도 <프랑켄슈타인> <프랑켄슈타인의 신부> <투명인간> 등 제임스 웨일의 몬스터영화들은 당시 대중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갓 앤 몬스터>의 빌 콘돈은 이러한 호러영화 장르에 대한 고찰을 한 개인의 무의식적 내면에 이식시키면서 윤리적 잣대 자체가 심판대에 오른 1900년대 초반의 시대상황을 고찰한다. 예를 들면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을 형상화한 클레이 분은 제임스 웨일의 손을 잡고 들판을 헤매다 어느덧 전쟁의 한복판에 다다른다. 그곳은 제임스 웨일이 1차대전중에 목격했던 바로 전쟁의 한복판으로 젊은 육신들은 한갓 썩어가는 고깃덩이로 벌판에 내던져 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제임스 웨일은 그 청년들 사이에 평화롭게 눕는다. 이미 그는 전쟁 당시 자신이 사랑하던 젊은 장교가 전선줄에 걸려 죽어 있는데도 그를 방치한 채 전쟁터를 빠져나오기에 급급했던 과거의 경험에 포위되어 있다.

빌 콘돈 감독은 1930년대의 몬스터 시리즈가 바로 제임스 웨일의 내면으로 대표되는 전세계인들의 근원적인 죄책감이 스크린에 투사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이나 투명인간은 바로 살의와 적대감에 가득 찬 1차대전의 무의식의 지층에서 기어나온 괴물들이다. 전쟁의 이미지는 그대로 호러의 이미지와 겹쳐지고 이는 자신의 정원사의 싱싱한 육체에 가스 마스크를 씌워서라도 그를 괴물로 형상화하려는 제임스 웨일의 헛된 몸짓에서 절정을 이룬다. 제임스 웨일의 괴물은 괴물보다 더 괴물스런 전쟁이 인간에게 남긴 거대한 상흔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제임스 웨일의 괴물들은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토드 브라우닝의 드라큘라와는 차별되는 독특한 분위기로 수세대에 걸쳐 관객을 매혹시키고 있다. 엄청나게 큰 고성에서 박쥐같이 크고 검은 망토를 펼치는 헝가리 악센트의 벨라 루고시의 드라큘라는 막 죽음의 관에서 뛰쳐나온 악몽의 사자로 관객을 압도한다. 그는 마치 맥베스처럼 신비하고 카리스마 있고 섹시하며 장중함을 잃지 않고 서서히 몰락해간다. 그러나 제임스 웨일의 프랑켄슈타인은 순진한 무지에서 비롯되는 연민이 존재하는 그런 캐릭터이다. 프랑켄슈타인은 길거리에서 만난 소녀를 물에 빠뜨리지만 그것은 그녀가 한 송이 꽃이라고 생각했고 그의 입장에서는 소녀와 보트 놀이를 한 것뿐이었다. 투명인간 역시 광기와 권력욕에 사로잡힌 과학자이지만 시골 여관주인에게 카펫을 더럽히는 이상한 인간으로 취급받고, 동료인 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한다. 쉴 곳을 찾아, 자신을 이해해줄 사람들을 찾아, 길거리를 헤매는 그들은 그 자체로 마을 사람들에게 가공할 공황상태를 만들어내는 괴물이지만 그들은 동시에 끝까지 인간으로 회복되기를 갈구하는 삶쪽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팀 버튼의 에드워드 가위손과 <배트맨>의 주인공들이 체화하는 비주류적이면서도 인간적인 괴물의 이미지, 그리고 수다스럽고 이기적인 보통사람들의 공동체에 대한 조롱어린 차가운 시선의 대부는 바로 제임스 웨일이었던 것이다.

실존적 품위와 장르적인 성찰이 어우러진 수작

그랬다. 제임스 웨일 자체가 괴물이었다. 1930년대 이미 할리우드에서는 드물게 게이를 선언한 제임스 웨일은 평생을 기독교적인 가치관의 측면에서 보자면 망측한 동성연애자라는 편견 속에서 살아나갔다. 그는 정숙한 숙녀에게서 정신적 구원을, 그리고 젊은 남성의 육체에서 육신의 갈망을 충족시키려는 분열된 소망을 끝내는 충족시키지 못하고 자살로 나아갔다. 실제로 그는 젊은 시절 유망한 의상 디자이너였던 도리스 진켄스에게 구혼했으나 거절당했고, 이후 어떤 여성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했다고 한다.

도리스 진켄스의 그림자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지고지순한 약혼녀 엘리자베스나 투명인간인 그리핀 박사의 연인 플로라에 어른거린다. 그러나 그녀들은 괴물인 프랑켄슈타인이나 투명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천재 과학자인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그리핀 박사를 사랑하는 여인들이기도 하다. 같이 공연한 매 클라크 같은 여배우들에게는 ‘완벽한 영국신사이자 천재’라는 평가를 받았던 제임스 웨일은 막상 이성관계에서는 제작자 데이비드 루이스를 애인으로 맞아들였고 무명의 프랑스 청년 피에르 포겔을 운전사로 채용하는 등 복잡한 애정행각을 계속해 나아갔다. 아마도 그는 구원의 여성상으로 생각하는 여성들에게는 이성과 품위라는 차가운 가면에 갖혀 꼼짝달싹 못했지만, 그보다 훨씬 만만하고 한수 가르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젊은 남성의 육체에서 고삐풀린 자유와 욕망의 나래를 발견했던 듯하다.

그렇다면 그는 1950년대 당시의 질식할 듯한 호모 포비아 때문에 자살하고 만 걸까? <갓 앤 몬스터>는 이에 대한 매우 타당한 이유들을 재구성하여 제임스 웨일의 실존적 고민에 한발 다가선다. 영화 속의 제임스 웨일의 저택은 극단적인 음영을 드리운 프랑켄슈타인의 물방앗간 실험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모던한 장소이다. 캘리포니아의 햇살은 화창하고 그의 집안에는 세잔과 렘브란트의 원본들이 가득한 기름진 곳이다. 그러나 바로 그 질식할 듯한 화창함에 드리운 어떤 비극, 자신이 스스로의 영혼을 팔아 부를 축적했다는 절망감, 평생 자신의 영화가 B급이라는 어떤 콤플렉스는 여러 배경을 통해 스크린 위로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갓 앤 몬스터>에서 제임스 웨일은 무엇이 오리지널이고 무엇이 고귀한 것인가에 대한 확실한 개념이 있는 근대의 사나이로 그려진다(그래서 그가 렘브란트의 작품을 모사하는 장면은 쓸쓸하게 우습다). 사람들은 그의 영화를 도깨비영화(spooky movie) 정도로 취급하고 정원사 클레이턴에게 무섭기보다 우습다고 감상평을 이야기한다. 1950년대의 할리우드에서는 팀 버튼도 스필버그도 웨스 크레이븐도 태어나지 않았다. TV 속의 괴물 프랑켄슈타인은 “외로운 것은 나쁜 거야. 친구가 좋아”라고 읊조린다.

그러나 그렇게 구체적인 방식으로 그러면서도 그렇게 교묘한 판타지의 너울을 쓴 위장 전술로 시대를 앞서는 영화가 또 어디 있었으랴. 제임스 웨일은 당시로써는 보기 드물게 영화의 중심에 육체와 인간성의 문제를 가져다놓은 감독이기도 했다. 영화 <투명인간>에서 과학자의 육체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그것이 트릭이라고 믿지 않는다. 프랑켄슈타인의 얼기설기한 육체는 멀쩡한 외모를 가졌지만 광기에 가득 찬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의 그것과 시종일관 대비된다. 그러나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프랑켄슈타인을 ‘그것’(it)이라 부르지 않고 괴물의 존재를 인정하고 괴물의 인간성을 회복시켜 ‘그’(he)라고 부를 때 정상으로 되돌아온다. 영화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제임스 웨일의 영화는 발군의 측면이 있다. 독일의 촬영기사 칼 프로인트의 도움으로 트랙킹숏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심리적인 공간으로 관객을 안내하였고, 툭툭 던져지는 과장된 클로즈업은 요즈음의 감독들이 자주 쓰는 퀵 줌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 생략의 효과를 만들어내었다. 1950년대 해머 프로덕션의 공포영화들이 총천연색화한 피와 사탄의 그림자, 노골적인 육체를 전시하면서 사람들을 끌어들일 때, 이미 제임스 웨일의 영화들은 미칠 듯이 돌아가는 물방앗간과 거대한 망루 같은 실험실을 끌어들여 매혹의 그림자 놀이를 창조했다. 특히 프랑켄슈타인에서 면밀하게 계산된 수직적 상승과 하강의 구도는 그 자체로 창조주를 능가하겠다는 과학자의 미친 수직적 욕망과 타락의 말로를 장대하게 시각화하고 있다.

결국 <선셋 대로>의 게이 버전판인 듯한 <갓 앤 몬스터>는 추락하는 모든 것들이 가져다주는 실존적 품위와 장르적인 성찰이 어울러진 보기 드문 수작이다. 영화의 마지막, 진흙인형이라는 클레이(clay)와 무섭게 하다라는 부(Boo!!)에서 이름을 딴 가공의 인물 클레이톤 분은 비오는 골목길에 프랑켄슈타인의 걸음걸이를 흉내내어 걸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함께 올해의 잊혀지지 않을 라스트신이 될 이 장면은 바로 <캔디맨2>라는 공포영화 감독으로 낙인찍인 빌 콘돈이 또다른 낙인으로 한 세상을 살았던 제임스 웨일에게 헌사하는 진심어린 오마주인 것만 같다. 그리고 그 사이를 뚫고 들려오는 제임스 웨일의 음성. “영화를 만드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이라네.” 그러니 프랑켄슈타인이여 고이 잠들라. 한때 창조주를 거부하고 물방앗간 밖으로 신을 내던졌던 한 인간은 창조주와 괴물과 타자의 삼위일체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구하고 사라져갔다. 심영섭/ 영화평론가 kss1966@un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