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4주된 젖먹이를 안고 월드컵 보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빨간 애들이 우리 편이야?” “박지성은 내 친구 문한나 동생 문지성이랑 이름이 같다”고 읊어대는(어휴, 부부젤라가 따로 없다) 아이와 나란히 한국-아르헨티나전을 보고 있다. 지금 멀티 마감 중이다. 노란색(심판)도 있는데 왜 핑크색은 없냐며 정말 쓸데없는 걸 물어대는 아이에게 “제발 평화롭게 축구 보자”고 말하는 사이 한골 먹었다. 버럭. 너 때문이야.
경기 흐름보다는 허벅지 근육의 움직임을 유심히 보는 편이지만, 축구는 골이 귀해 더 재미있다. 어느 스포츠 평론가가 1990년대 초반 <마지막 승부>류의 농구가 뜰 때 “이제 축구의 시대는 갔다”고 했는데, 단견이었다. 축구만큼 지구촌을 (비교적) 고루 열광시키는 스포츠는 여전히 없다. 그리고 (작은 키 같은)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스포츠도 드물다. 이변도 있지만 결국 실력이 말해준다. 뭔가 좀 평등한 느낌이랄까(와우. 게다가 인저리 타임에도 골이 들어가잖아. 박주영의 프리킥 직전 애는 “왜 저 사람들은 저기 서서 고추를 가리냐”고 또 묻는다).
정대세의 눈물이 있었고 북한의 선전이 있었고 대통령의 “북한이 이겼으면 좋았을 텐데…” 발언이 있었다. “정치는 정치일 뿐이고, 핏줄을 나눈 민족에 대한 감정은 별개라는 대통령의 동포애”라는 배보다 배꼽이 큰 청와대 관계자의 해설(업계 용어로 마사지)도 있었다. 그러나 군사분계선에 설치돼 있는 확성기가 계속 맘에 걸린다. 대북심리전도 전쟁이다(어르신들, 지금 국가보안법을 어기는 것은 참여연대가 아니라 확성기입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를 정치적 쇼로 치부하지만, 전쟁은 정치를 뛰어넘는다. 게다가 북한의 체제 작동 원리는 우리의 논리로 읽어내기 힘들다. 이미 북한군은 전방경계초소 총안을 열고 직사포를 설치하고 정찰을 강화하고 있단다. 잘 막는 것도 이기는 거다. 물론 흐름만 잘 타면 역전도 가능하지만(기훈아, 성용아 괜찮아 괜찮아), 오늘 아파트 단지를 들썩인 박수와 환호는 주로 우리 수비가 선전할 때 울렸다. 실력 차가 크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말했듯이 우리는 ‘가장 호전적인 세력’을 가까이에 두고 있지 않은가.
후반전 내리 두골을 내주면서 아르헨티나가 진짜 잘한다는 것과 센 상대일수록 작은 실수나 동요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거듭 확인했다. 오 피스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