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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지지선을 지키기 위한 남과 북의 처절한 전쟁 <포화속으로>
강병진 2010-06-16

소년은 손끝을 깨물어 태극기에 적는다. “가자, 포화 속으로.” 포화 속에서 그가 살아남을 길은 없다. 그들이 가자고 외치는 곳은 곧 죽음이다. <포화속으로>는 죽음을 불사하는 소년들의 응전을 혈서만큼 강렬한 이미지로 그리는 전쟁영화다. 나라를 지키려는 희생은 분명 숭고하지만 영화는 그들이 왜 죽음을 자처하는지에 대해 답하지 않는다. 태극기 위로 혈서가 적히는 이 장면에는 사실 어떤 사연이나 감정이 없다.

무대는 6·25전쟁이다. 1950년 8월, 포항을 지키던 국군은 낙동강을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강석대(김승우) 대위는 포항을 71명의 학도병에 맡기면서, 유일하게 전투를 경험한 장범(최승현)을 중대장으로 임명한다. 하지만 소년원에 끌려가는 대신 공산당을 무찌르겠다고 나선 갑조(권상우)와 그의 친구들은 대놓고 장범을 무시한다. 한편 박무랑(차승원) 소좌가 이끄는 인민군 776부대는 낙동강을 점령하라는 당의 명령을 무시하고 포항을 치려 한다. 총 한번 제대로 쏜 적이 없는 학도병들은 전술과 화력으로 무장한 인민군의 공격에 맞서야 하는 위기에 놓인다.

전쟁과 형제애를 결부시킨 <태극기 휘날리며>와 비교할 때, <포화속으로>가 전쟁을 다루는 태도는 매우 직접적이다. <포화속으로>에는 적군과 아군이 확연히 갈린다. 인민군 부대가 진군하는 모습은 주인공에게 다가오는 위협의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 과감한 스펙터클로 전시하는 전투신 또한 공성과 수성의 대립을 그리는 여러 전쟁영화의 관습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6·25전쟁을 회고하고, 전쟁이 발발한 지 60주년이 되는 2010년 6월에 개봉하는 <포화속으로>에서 정작 6·25전쟁의 성격은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가 담으려는 이야기가 국지전에 해당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6·25전쟁 자체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포화속으로>의 인물들 어느 누구도 6·25전쟁이 가진 정치나 이데올로기적 논쟁을 입에 담지 않는다. 인민군 박무랑은 오로지 전쟁의지와 감에 의존하며 때로는 낭만적 기질이 엿보이는 현장파 군인이고, 국군 대위 강석대에게는 맡은 임무와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있을 뿐이다. 학도병들에게도 인민군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적대감의 대상인 ‘빨갱이’일 뿐이다. 해외판매 가능성을 염두에 둔 전략이거나 제작진의 관심이 그저 ‘전쟁’이란 극한상황 자체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의 성격을 지운 <포화속으로>는 그곳에 보편적인 이야기를 채워 넣었다. 강한 스펙터클을 전시하는 전투신으로 시작한 영화는 이어 군인이 아닌 군인인 학도병들의 모습을 비춘다. 난생처음 손에 쥔 총과 수류탄 등에 흥분한 학도병들의 생활은 한 교실에 모인 고등학생들과 다를 게 없다. 뜻하지 않게 부대를 이끌게 된 오장범과 부대원들을 기로 누르려는 갑조의 갈등은 앞자리에 앉은 반장과 뒷자리 싸움짱의 대결과 비슷하다. <친구>나 <말죽거리 잔혹사>, 혹은 그 외 많은 조폭영화 속에서 보던 익숙한 풍경이 이들의 생활에도 녹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인민군과 몇번의 교전을 치른 뒤부터 그들이 가진 본래의 캐릭터를 잃어버린다. 필사의 전투를 앞둔 학도병들은 뜻을 맞추어 화염병을 만들고, 박격포를 장전하는 등 결사항전의 태세를 갖춘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자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폭탄을 몸에 묶고 적의 탱크로 향한다. 그들은 왜 갑자기 희생을 자처하는가. 이에 대해 영화는 끊이지 않는 음악과 슬로모션으로 설명한다. 하나의 이미지에 불과한 희생이자 강조된 것에 지나지 않는 비장함.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전쟁영화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다소 의아하게 여겨질 부분이다.

비극적인 정서를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반전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아닌 <포화속으로>는 전쟁터로 돌진하는 소년들의 땀 흘린 얼굴과 그들이 흘린 피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포화만을 담고 있다. 과감한 클로즈업과 콘트라스트를 높인 영상은 이들의 전쟁을 멋진 남자들의 멋스러운 전투로 그려낸다. 석양을 배경으로, 황금빛 들판을 무대로 벌이는 그들의 전사적 활약은 지금까지 6·25를 그린 어떤 전쟁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그림이다. 그러나 달리 보면 빈약한 이야기를 극복하고자 화려한 연출 테크닉과 연속적인 음악을 조합한 전략이다. 연출을 맡은 이재한 감독 또한 전쟁에 흥분하는 극중의 학도병의 입장과 다르지 않았을 듯 보인다. <포화속으로>는 전쟁의 스펙터클과 그 속에 처한 남자들의 혈투에 경도된 영화다. 관객이 흘려야 할 것은 눈물이 아니라, 그들을 비추는 압도적인 영상에 입이 떡 벌어져 흐르는 침이다. 물론 최루성 전쟁영화가 아니라는 평가가 칭찬인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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