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개표가 이렇게 재미있었던 적은 없었다. 새벽까지 혼자 눈 벌겋게 방송 채널 돌려보고 인터넷 들여다보느라 바빴다. 유선전화 위주의 여론조사는 더 늦기 전에 박물관에 보내야겠다. 최대 승리자가 국민이라면 최대 패배자는 여론조사 업체들이다.
스무살 이후 선거 때마다 민중후보와 민주후보 사이에서 갈등했던 나와 내 친구들은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다행히 나는 심상정 언니 덕에 처음으로 그 고민없이 한표를 행사할 수 있었다). 서울 사는 친구 한명은 강남3구 개표가 늦어지는 걸 보고 애태우다 남은 표 엑셀로 돌려보고는 얼추 2만표 정도 차이를 예상했단다. 그 밤에 애 재워놓고 말이다. 정작 본인은 몇날 며칠 고민하다가 노회찬 찍었으면서. 늘 3번 찍고 2번 당선 기다리는 이노무 세대의 팔자라니.
열심히 뛴 언니 오빠들께 한말씀씩 올리는 걸로 칼럼을 대신할까 한다. 개표방송 보느라 심각한 수면부족인 관계로. 내가 수도권 거주자인 점과 지면 사정도 아울러 양해구한다.
우선, 오세훈 오빠. 소감문 인상적이었어요. 구청장들도 시의원들도 야당 일색이니 그 핑계로라도 이젠 살짝 얹혀 가세요. 재선 공천 때문에 찍소리 못하고 사신 거 잘 알아요. 4대강 찬성도 무상급식 반대도 하지 마세요. 솔직히 언제는 민심을 몰랐나요?
심상정 언니. 울지 마세요. 그런 용기 쉽게 낼 수 있는 게 아니죠. 덕분에 여러 생각을 하게 됐어요. 언니 덕에 평생 처음 진보신당 홈피 들어가봤다는 이웃들도 꽤 된답니다.
유시민 오빠, 아무 생각 말고 며칠 푹 쉬세요. 눈 많이 빨개졌던데. 선거 내내 알아서 기는 방송 화면에는 늘 그런 모습만 나오더군요.
노회찬 오빠. 당분간 인터넷 하지 마세요. 왜냐. 당신은 소중하니까.
김문수 오빠. 당선 확실해지고 김주하 앵커와 인터뷰 하는 거 봤는데, 예능감 좀 키우세요. 개인적으로 김제동씨에게 개인교습 좀 받으셨으면 합니다. 왜냐. 당신은 답답하니까.
한명숙 언니. 사실상 이긴 겁니다. 간발 차이의 낙선으로 민주당이 착각하고 오만해지지 않도록 지키셨네요. 너무 친절히 부연설명하지 않는 기술만 다듬으시면 오는 대선에서 멋진 방송 토론도 할 수 있을 거예요.
아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 서울 사는 학부모들은 경기 사는 학부모들에게 한잔씩 대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