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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판 남원고사 <방자전>
이영진 2010-06-02

<음란서생>의 첫 장면에 세책점(貰冊店)이 나온다. 쓰개치마로 얼굴을 가린 부녀자들이 야밤에 총총걸음으로 찾는 곳이 바로 세책점이다. 19세기 후반 서울 세책점의 베스트셀러는 <남원고사>. <춘향전>을 독자들의 입맛에 맞게 각색한 국문 필사본 소설이다. 욕설과 음담으로 넘쳐나는 <남원고사>에서 방자는 춘향에게 ‘몽룡이 사또의 자제’라고 소개하지 않는다. 대신 ‘천하의 오입쟁이’라고 전한다. 그리고는 춘향에게 “네가 항라 속곳의 가랑이를 싱숭생숭 빼내어 아주 똘똘 말아다가 왼쪽 볼기짝에 붙인다면” 남원이 다 네 차지라는 속 깊은 조언도 한다.

<음란서생>에 이은 김대우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 <방자전>은 21세기판 <남원고사>다. 방자는 더이상 도련님 행차를 위해 나귀에 안장 얹는 신세가 아니다. 춘향을 보고 눈이 뒤집힌 방자에게 몽룡은 질시의 대상일 뿐이다. 욕정을 참다못한 방자는 춘향을 품는 극악무도 행패까지 부린다. 춘향을 향한 몽룡의 연정 또한 시들하다. 장부 일언 중천금이라던 <춘향전>의 몽룡은 온데간데없다. 춘향과 천년해로하겠다는 약조문도 실은 하룻밤의 향락 때문에 빚어진 해프닝이다. 두 남정네 사이에 선 춘향 또한 세상 물정 모르는 어수룩한 열여섯이 아니다.

“몽룡하고 춘향은 저렇게 행복한데 그 시간 동안 방자와 향단이는 뭘 하고 지냈을까.” 김대우 감독의 관심은 인간은 매한가지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보기 좋은 것을 취하고 싶은 욕망의 속성 앞에 반상의 굴레 따윈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음란서생>에서 조선 최고의 문장가 김윤서가 임금에게 올리는 상소문의 첫머리에 정신줄 놓고 ‘음부’라고 적었을까. 몸종이 주인의 여자를 탐한다는, <방자전>의 맹랑한 상상력도 양반이나 종놈이나 “고기 먹고 싶은” 마음은 하나같이 똑같다는 데서 흘러나온다.

“양반은 마음을 안 드러내고 감추는 거야.” 방자도 아는 공맹의 도리가 성적 욕망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때, <방자전>은 익살과 재담으로 가득 찬 호리병이 된다. 몽룡은 <논어>를 읽으면 저절로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나쁜 남자’가 될 수 있다 말하고, 마노인은 생전에 “2만명의 여자를 상대”한 전설의 장판봉 선생에게 사사했다는 엽기 비법을 방자에게 상세히 일러준다. “세상에 안 줘서 버림받은 여자는 없다”는 월매의 고언에 이어 고을의 모든 여자와 자기 위해 과거에 응시했다는 변학도가 등장하면 폭소를 참지 못할 것이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옛 격식을 고스란히 걸러 올린 청주라면, <방자전>은 세태를 앞뒤 가리지 않고 뒤섞은 폭탄주에 가깝다. 날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방자전>은 한국사회의 볼썽사나운 꼬락서니들을 몇 백년 전의 이야기에 투사하기도 한다. 인물들을 만들어내는 방식 또한 마찬가지다. 원본의 캐릭터를 한데 섞어 흔든 다음 성적 욕망이라는 잔에 따라 낸다. 그 결과 방자는 몽룡처럼, 몽룡은 변학도처럼 보인다. 캐릭터와 배우들(이 이전에 맡았던 캐릭터)을 혼합한 맛도 적잖다. 이몽룡은 품행제로이고, 방자는 광식이의 선조 격 같기도 하다.

방자는 도련님의 마음을 전하기 바쁜 파랑새였을까. 몽룡은 왜 예쁜 색시 마다하고 춘향을 찾았을까. 춘향은 오매불망 몽룡만을 기다렸을까. <열녀춘향수절가>의 모든 대목에 의문부호를 가져다 붙인 <방자전>은 웃음의 맥락에서는 분명한 성취다. 다만, <춘향전>이 사랑하는 춘향을 온전히 얻지 못한 몸종 방자의 넋두리가 아닐까라는 추측으로 넘어갈 때 웃음은 외려 방해물이 된다. 터진 웃음보를 추스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뒤늦게 <사랑가>를 부르는 방자의 진심을 전하기에 농담은 너무 잦고, 가볍다.

<방자전>은 <음란서생>의 속편이기도 하다. 색에 흠뻑 취한 선비들이 등장해서만은 아니다. <음란서생>의 김윤서를 살 떨리게 만든 것은 보이지 않는 대중의 반응이었다. <방자전>에서는 창작자와 대중이 아니라 창작자와 인물 사이의 긴장이 다소 미약하게 다뤄진다. 방자의 이야기를 받아 적는 색안경을 낀 소설가는 인물을 창조하는 것이 녹록지 않은 작업임을 드러낸다. “억울한 하인의 이야기를 꼭 잘 써보겠다”고 했다가 타박 듣는 색안경 소설가는 <음란서생>의 김윤서보다 김대우 감독과 더 가깝다. ‘이야기꾼’ 김대우 감독의 세 번째 천일야화는 어떤 빛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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