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1회를 맞는 서울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영화제가 6월4일부터 8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지난 10년을 돌아보고 또 다른 10년을 준비할 단계에 접어든 11회 LGBT영화제의 슬로건은 ‘LGBT Going!’이다. ‘LGBT Going!’이라는 말에는 당당하고, 즐겁고, 아름답고, 섹시하게(Lively, Gay, Beautiful, Tasty)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다. 남미, 유럽, 아시아에서 온 총 19편의 장·단편들은 슬로건처럼 때론 즐겁고, 때론 섹시하다. 올해 LGBT영화제에선 정통 멜로드라마부터 뮤지컬, 코미디, 스릴러,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날 수 있다.
개막작 <빅 게이 뮤지컬>은 뮤지컬이라는 형식을 빌렸다. 영화의 주인공 폴과 에디는 영화 속 뮤지컬 <신은 아담과 스티브를 창조했다>의 주연배우다. 폴은 멋진 남자친구와의 데이트를 꿈꾸고, 에디는 부모에게 커밍아웃하지만 그들의 냉담한 반응에 절망한다. 현실에서의 폴과 에디의 삶은 그들의 뮤지컬 공연 장면과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빅 게이 뮤지컬>의 재미는 이렇듯 유쾌하지 않은 현실을 재기발랄한 뮤지컬로 표현해내는 과정에서 나온다. 무대 위 남자들은 숏팬츠를 입고 천사 날개를 달고 엉덩이를 흔들며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신은 게이를 창조했다’ ‘신은 게이를 사랑한다’ 같은 단순하지만 도발적인 대사는 결국 이 영화의 주제와 닿아 있다. <사랑은 네 단어> <사랑과 이별>로 LGBT영화제에 소개된 적 있는 캐스퍼 앤드레아스 감독이 연출했다.
귀여운 남창의 소박한 꿈?
다큐멘터리 <대물 피트>는 올해 LGBT영화제의 귀여운 문제작이다. 피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손님을 받는 남창이 되는 것이 꿈이다. 그러던 어느 날 피트는 런던에서 카이라는 동료 남창을 만난다. 그때부터 피트는 카이를 좋아하는 마음과 더 많은 남자를 상대하고 싶은 꿈 사이에서 갈등한다. <대물 피트>는 사실적으로 혹은 노골적으로 피트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아 보여준다. 그것이 거북하기보다는 오히려 피트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게 해준다는 점에서 여느 포르노와 다르다. 첫 장편 데뷔작 <대물 피트>로 여러 영화제에 초청받은 앤드루 하이 감독은 <글래디에이터> <블랙 호크 다운> 등에서의 편집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대 떠나면> <치카 부스카 치카> <포르노그래피>는 LGBT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의 추천작이다. 하비에르 푸엔테스-레온 감독의 <그대 떠나면>은 2010년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콜롬비아의 작은 어촌 마을에 사는 화가 산티아고와 어부 미구엘의 사랑이 눈물 쏙 빠지게 그려진다.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영상과 탄탄한 이야기가 영화의 완성도를 뒷받침한다. <치카 부스카 치카>는 레즈비언 친구들의 우정과 사랑을 다룬 스페인판 <L-Word>라 할 만하다. 어느 날 룸메이트인 모니카와 카르멘 사이에 니네스가 끼어든다. 레즈비언인 모니카와 니네스의 관계, 남자친구가 있는 카르멘과 니네스의 관계가 흥미롭게 얽혀든다. 동명의 스페인 TV드라마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만 모아 장편영화로 만들어서인지 <치카 부스카 치카>는 가볍고 유쾌한 소동극의 느낌이 난다. 데이비드 키트렛지 감독의 <포르노그래피>는 잘나가는 게이 포르노 스타의 실종을 다룬 스릴러영화다. <포르노그래피>에는 강도 높은 성애 묘사와 노출신이 등장한다. 미국영화협회로부터 등급을 받지 못했을 정도다. <포르노그래피>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영화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외에도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미묘한 감정을 느끼는 두 남자의 관계를 섬세하게 표현한 <플랜 B>, 권위적인 남편과 헤어지고 홀로서기한 여자가 운명적인 사랑과 가족 사이에서 겪는 갈등을 그린 <어느 날 갑자기>, 사귄 지 5주년 된 게이 커플의 사랑을 그린 소준문 감독의 장편 데뷔작 <REC> 등의 장편영화가 영화제 기간에 소개된다. ‘패밀리 퀴어 숏!’ ‘핑크러브 퀴어 숏!’ 같은 단편영화 섹션에서는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동성애자들이 겪는 어려움, 퀴어들의 핑크빛 사랑과 성장기를 그린 단편을 만날 수 있다. 다양한 영화제 이벤트와 상영일정은 영화제 홈페이지(http://www.selff.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