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드리밍> California Dreamin’(Endless)
2007년 | 크리스티안 네메스쿠 | 148분 2.35:1 아나모픽 | DD 5.1, 2.0 루마니아어 & 영어 일부 영어자막 | 아티피셜아이(영국)
화질 ★★★☆ 음질 ★★★☆ 부록 ★★★☆
2006년 중반, 크리스티안 네메스쿠와 파비안 비엘린스키가 나란히 세상을 떠났다. 새로운 뉴웨이브의 진원지로 주목받던 루마니아와 아르헨티나 영화계는 큰 손실을 입었다. 루마니아의 신성 가운데 가장 젊었던 네메스쿠의 경우, 데뷔작의 편집을 막 끝낸 터라 안타까움이 더했다. 그의 사후 별다른 손질을 가하지 않은 채 칸영화제에 출품된 <캘리포니아 드리밍>은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완성도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지 않았지만,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본 대다수는 네메스쿠의 미래가 분명 밝았을 거라는 데 동의했다.
코소보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99년 5월, 나토는 유고슬라비아 공격용 군수품의 수송을 미군에 맡긴다. 국경지대를 향하던 열차는 엉뚱하게 루마니아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발목을 잡힌다. 이미 국가 간 양해가 이루어진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역장인 도이아루는 통관 서류를 요구하며 강경 대응한다. 상부의 지시가 내려와도 그가 원칙을 고집하며 꿈쩍도 하지 않자, 24시간 안에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미군 지휘관은 난감하다. 도이아루의 저의는 대체 뭐란 말인가. <라자레스쿠씨의 죽음> <4개월, 3주… 그리고 2일> <폴리스, 형용사> 등 루마니아 뉴웨이브의 대표작들이 현실을 집요하게 붙들고 늘어지며 특유의 리얼리즘을 전개한 것과 달리, <캘리포니아 드리밍>은 동구권 영화의 전통 중 하나인 블랙유머를 버릴 마음이 없다. 게다가 인물과 이야기의 수많은 가지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능력에선 왕년의 에미르 쿠스투리차가 연상되고, 할리우드 스타를 스스럼없이 영화에 끌어들이는 대중적인 자세까지 갖췄다. 무사안일주의로 지탱하는 정부 관료들, 스스로는 부패의 온상이면서 기본을 내세우는 주인공, 이익에 눈이 멀어 일개 미군 앞에서 온몸을 던지는 사람들을 풍자하는 영화는 심심찮게 웃음을 유발한다.
네메스쿠는 “한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과 세계 정치상황간의 유사점을 감지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병사들이 주민들과 흥겨운 닷새를 보낸다는 이야기인 <캘리포니아 드리밍>은 <지중해>의 루마니아 버전이 아니다. ‘문화 차이로 인한 소통 불가’를 다룬 소극을 넘어, <캘리포니아 드리밍>은 동구권 영화의 몇몇 대가들만이 다다른 경지를 탐한다. 네메스쿠는 1999년 5월의 이야기 사이로 1944년 5월의 에피소드를 삽입했다. 캘리포니아 소재 군수공장에서 만들어진 포탄을 매개로 연결되는 55년의 시간은 영화에 풍부한 역사성과 정치성을 부여한다. 55년 전, 루마니아의 아버지들은 미국, 영국, 러시아, 독일 사이에서 노선을 강요받았고,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행된 폭력은 기록되지 않는 비극을 낳았다. 개인의 비극일랑 모두 잊힌 현재, 루마니아의 아버지들에겐 선택의 권리조차 없다. 마을의 대표는 ‘NATO’의 발음은 알아듣지 못하나 미국이 세상에서 최고 무서운 나라임을 알고 있으며, 시골 사람들은 그 정체를 모르면서도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을 꿈꾼다(영화의 부제는 ‘끝없는’이다). 영화의 장엄한 클라이맥스는, 오직 생존을 위해 천사를 찾았던 사람들이 미국이란 악마에게 이용당하다 결국 희생양이 됐던 역사의 비극을 은유한다. 만약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보다 웃기만 했다면,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과연 영화의 풍경보다 성숙한지 질문해볼 일이다. 그리고 30년 전 같은 5월에 한국에서 벌어진 일을 기억하라. 우리는 당시 미국이 취한 행동의 진실을 알지 못하며, 마찬가지로 지금 5월에도 우리의 진짜 적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다. 영국에서 출시된 <캘리포니아 드리밍>의 DVD는 예고편과 생전의 네메스쿠 모습, 영화의 기반이 된 실제 사건, 인터뷰, 제작현장을 담은 ‘메이킹필름’(32분)을 부록으로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