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주말 하루뿐이었다. 강동원, 고수 주연의 <초능력자> 촬영이 쉬는 날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는 남자(강동원)와 유일하게 그의 힘이 미치지 않는 남자(고수)의 대결을 그리는 이 작품에서 유일승(30)씨는 홍경표 촬영감독팀의 세컨드다. 촬영장비를 관리하고, 현장에서 카메라 세팅을 하는 것이 그의 임무다. 대학에서 촬영을 전공하고 영상원 전문사 촬영전공 과정을 휴학 중인 그는 <어깨너머의 연인>을 시작으로 최근의 <마더>까지 약 5년 동안 홍경표 촬영감독과 함께 일했다. “이야기에 맞는 촬영이 좋은 촬영”이라는 그는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홍경표 촬영감독팀에는 어떻게 들어갔나. =2006년 졸업영화를 촬영한 뒤였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현장에 아는 사람이 없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어깨너머의 연인> 촬영부 막내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들어가기 힘든 자리인데 운이 좋았다.
-홍경표 촬영감독이 아무나 뽑진 않을 텐데. =내가 마산 출신이라 조금 좋아하시더라. 홍 감독님은 경북 왜관 출신이고. 사람을 정말 좋아하는 분이라 자신과 연결고리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웃음) 평소 존경하는 촬영감독님이라 무조건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촬영 끝나고 졸업영화도 보여드렸다.
-성격이 차분해 보인다. 왠지 현장에서 실수를 많이 안 했을 것 같다. =많이 했다. 다만 실수를 절대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했다. (웃음)
-실수를 감추는 노하우가 있나. =표정관리를 잘해야 한다. 실수를 하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차근차근 해결하면 된다. 또 거짓말하면 안된다. 문제가 있을 때 바로바로 이야기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경표 촬영팀은 촬영감독이 촬영뿐만 아니라 조명까지 관장하는 DP(Director of Photographer) 시스템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기술적인 부분보다 시스템을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조명, 그립은 물론이고 다른 파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을 알아야 했다.
-구체적으로 홍경표의 DP시스템은 어떤 방식으로 운용되나. =B카메라를 제외하고 보통 촬영팀 4명, 조명팀 5명, 그립팀 5명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촬영 퍼스트는 노출과 포커스를 담당하고, 세컨드는 장비와 관련된 모든 것을 관리한다. 한마디로 살림꾼이다. 서드는 로딩, 필름 주문 등 필름과 관련된 일을 맡고 막내는 모든 일을 돕는다.
-촬영부 일을 하면서 배운 것은 무엇인가. =홍경표 촬영감독님은 항상 “화면에 긴장감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전체적으로 밝은 그림이 거의 없다. 주로 그림자(섀도)가 화면을 지배하는 조명을 선호하신다. 화면에 깊이감이 느껴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로키(low Key, 어둠)를 컨트롤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항상 자신감이 넘치신다. 그만큼 데이터와 노하우가 있다는 말이다. 어느 순간 나 역시 감독님의 그런 방식들을 따라하게 되더라. 이야기를 꼼꼼하게 분석해서 그것에 맞는 촬영을 하게 됐다. 무엇보다 성실함을 배웠다. 홍 감독님은 항상 30분 일찍 현장에 도착해서 공간과 빛을 분석한다.
-일을 그만둘 생각을 한 적은 없나. =한번도 해본 적 없다. 상업영화를 하지 않을 때는 항상 단편을 작업했다. 카메라만 잡으면 흥분되더라. 그 느낌 때문에 끊을 수가 없다. 마치 마약처럼.
-촬영을 전공하거나 촬영감독을 꿈꾸는 학생들을 위해 조언을 한마디 하자면. =주변을 관찰하는 습관을 길렀으면 좋겠다. 그게 기술보다 먼저인 것 같다. 같은 공간이라도 날씨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이지 않나. 동시에 풍경이 왜 그렇게 보이는지를 알아야 한다. 또 사진을 많이 찍는 게 중요하다. 나의 경우 친구를 모델로 다양하게 찍어봤다. 조명의 위치, 노출에 따라 그림이 어떻게 나오는지 스크랩도 했다.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조명 톤을 찾아나갔다. 그걸 반복하다보면 데이터가 쌓인다. 장르가 멜로든 스릴러든 이야기에 맞는 촬영을 알게 되는 거다. 조명 때문에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결국 촬영감독은 하나만 잘해서는 안된다. 여러 가지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동시에 따끔한 충고도 하나 하자면. =단순히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영화 일을 하겠다고 하면 안된다. 나 역시 보는 것을 좋아해서 시작했지만 직접 일을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육체적으로 힘들기도 하고. 그런 것들을 모두 감수할 수 있다면 해라.
-개인적인 고민은 무엇인가. =<초능력자>가 끝나면 학교에 복학한다. 장편영화 촬영에 도전하고 싶다. 일을 하다보면 촬영감독뿐만 아니라 감독으로부터 배우는 것도 많다. <마더> 때 봉준호 감독님의 배우 연기지도, 상황에 맞는 콘티 등을 지켜봤다. 이번 영화의 경우 리듬감이 굉장히 중요하더라. 각각의 감독님들의 장점만 받아들여서 내 작업할 때 적극 활용하려고 한다. 그게 지금 가장 큰 고민이자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