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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춘권이 홍가권을 만났을 때? 아니 견자단과 홍금보의 맞장승부!
강병진 2010-05-27

홍콩에서 미리 만난 <엽문2>

지난 4월26일, 홍콩의 첵랍콕 국제공항에 내리자 견자단이 웃고 있었다. 공항 내 서점에서 발견한 잡지 <명보주간>(明報周刊)의 표지였다.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찍은 사진 속 견자단은 무술고수가 아닌 자상한 아빠이자, 다정한 남편 혹은 성공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엽문2> 홍보를 위해 찍었을 이 사진은 의아했다. 가족사진보다는 두 주먹을 불끈 쥔 견자단의 강렬한 사진 한장이 낫지 않았을까. 한편으로는 사진 속 견자단이 영화 속 엽문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엽문>에 비친 엽문의 모습 중 하나는 아내의 신경질에 쩔쩔매는 보통 남자였다. 대련을 앞두고 있을 때는 아들이 그린 그림조차 봐주지 않는 무술인이지만, “아이에게 신경 좀 쓰라”는 아내의 말에 꼼짝하지 못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다. 다음날 만난 견자단은 애처가로서의 삶을 숨기지 않았다. “<엽문>에는 내 성격이 많이 반영됐다. 나는 집에 있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친구들을 만나도 밤 11시까지는 꼭 집에 들어가려고 한다. 전편의 관객에게 <엽문>이 화제가 된 이유도 무술도 잘하는데, 가정적이기까지한 남자라는 이유였다. (웃음)” <엽문2>에서도 홍콩 관객은 영춘권의 고수 엽문보다 자상한 남자 엽문을 더 사랑할지 모를 일이다.

중국에서 홍콩으로, 일본군 대신 영국군

중국의 불산을 배경으로 한 전편에 이어 1950년대 홍콩으로 무대를 옮겨온 <엽문2>에서도 엽문은 여전히 가족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집세는 부족하고, 일거리는 없고, 심지어 아내 장영성(웅대림)은 둘째를 임신했다. 제자를 받지 않으려 했던 엽문은 결국 돈을 벌기 위해 도장을 차린다. 하지만 이곳 역시 불산에 있던 무관의 거리처럼 수많은 무술사범들이 서로를 견제하는 도시다. 엽문의 도장이 번창하자, 지역 최고의 무술사범인 홍가권의 고수 홍진남(홍금보)은 그에게 다른 사범들과 겨루어 자격을 인정받으라고 강요한다. 많은 사범을 쓰러뜨린 뒤, 홍진남과 무승부를 이룬 엽문은 그와 무술고수로서의 존경을 교감한다. 한편, 당시 홍콩을 지배하던 영국 군부는 자국의 권투챔피언인 트위스터(다렌 샤라비)를 데려와 영국의 위대함과 중국의 무력함을 증명하려든다. 홍진남은 민족적 자존심을 위해 그와의 대결에 나서고, 엽문은 그들의 대결을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전편인 <엽문>은 엽문이 수련하는 영춘권의 철학을 “중용을 지키고 평화를 위해 싸우는 것”으로 소개했다. 엽문의 액션이 상대의 선제공격을 제압하고, 예의와 여유를 지키는 스타일을 갖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엽문의 캐릭터 또한 영춘권의 특징에서 비롯된 것이다. 단순히 말하면 그는 사고처리반이다. 먼저 사고를 치는 법은 없고, 언제나 남들이 친 사고를 무술로 중재하는 그의 최대 약점은 바로 ‘오지랖’이다. <엽문2>에서도 그의 무술은 ‘어쩔 수 없이’ 드러난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으려는 사람들이 걸어오는 대련 때문에, 제자들이 일으킨 소란을 중재하기 위해, 마을의 평화를 위해, 그리고 망가진 중국인의 자존심을 위해. 엽문을 행동으로 이끄는 여러 에피소드들이 나열되고, 마지막에는 거대한 적과의 대결로 이어지는 구성을 따르는 <엽문2>는 전편에서 짜놓은 구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속편이다. <엽문>을 소개한 1년 전의 자료에서 무대를 홍콩으로 바꾸고, 일본군을 영국군으로만 바꾸면 재활용도 가능해 보인다. 단, 전편과 다른 재미가 있다면 홍금보의 등장이다. 그가 연기한 홍진남은 영화에서 엽문과 쌍웅을 겨루는 유일한 무술고수다. 엽문의 생활을 방해하는 악역처럼 보이던 그가 엽문처럼 가족을 먹여살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비출 때, 이들의 만남은 좀더 흥미로워진다. 무술로 결판을 내려 했던 그들 앞에 홍진남의 가족이 나타나자 엽문은 말한다. “나와 싸워 이기는 것이 중요한가, 당신의 가족과 저녁을 먹는 것이 중요한가.” 그 말에 멋쩍어진 홍진남이 가족에게 다가갈 때, <엽문2>는 고난의 세월을 사는 두 아버지의 분투를 보여주는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홍금보와의 수산시장과 원탁 액션은 백미

홍금보의 등장으로 흥미로워진 또 다른 부분은 액션이다. <엽문2>는 홍진남을 통해 ‘홍가권’이라는 또 다른 문파의 무술을 소개하는 한편, 인물과 인물간의 대결에 주목했던 전편과 달리 공간의 특징을 드러내는 액션신을 보여준다. 1950년대의 수산시장을 배경으로 한 대규모 액션신은 그중 하나다. 인물들이 움직이면서 튀는 물의 움직임이나 어망, 나무상자, 대나무 크레인 등 주변 소품을 이용한 액션이 두드러지는 장면이다. 홍금보는 이 장면에서 액션 설계와 함께 액션과 결부되는 소품들의 위치를 일일이 지정했다고 한다. 식당의 원탁에서 벌어지는 홍진남과 엽문의 대결도 <엽문2>의 중요한 볼거리다. 이들은 원탁에 먼저 떨어지는 자가 패배하는 대련을 벌인다. 홍진남과 엽문은 각자의 무술을 활용하는 데, 이때 두 배우는 기술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해 보이는 액션을 구사하고 있다. 하지만 엽위신 감독은 “어떤 특수효과도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두 배우가 직접 싸웠다. 원탁의 평형을 유지하면서 액션을 구성하는 부분에 중점을 두었다. 가장 많이 신경쓴 부분은 안전이었다. 두 배우에게 와이어를 묶기는 했는데, 그것도 손쉬운 점프가 아니라 안전을 위해서 묶은 거였다.” <엽문2>는 홍금보의 출연만으로도 전편보다 더 크고 넓어야만 한다는 속편의 숙명을 지킨 셈이다.

하지만 나름 공들인 속편임에도 불구하고 <엽문2>는 엽문의 영웅적 서사를 위해 여전히 손발이 오글거리는 순간을 함께 구성하고 있다. 엽문의 액션은 그가 같은 동족과 싸울 때 흥미롭지만, 적과 싸울 때 심심해진다. 전편의 적이었던 일본 군인 미우라(이케우치 히로유키)가 나름 무술인으로서의 도를 지킬 줄 아는 이였다면 <엽문2>의 트위스터는 그저 거칠고 무자비한 괴물의 모습이다. 이미 승자를 정해놓은 게임인 이상, 엽문이 그를 쓰러뜨리고 중국인의 자존심을 지킬 것이라는 건 스포일러가 아니다. 엽위신 감독은 <황비홍>이나 <무인 곽원갑>처럼 중국의 무술고수가 외국인과 대결하는 다른 영화들과 어떤 차이가 있냐는 질문에 “이야기에 차별점을 두었다”고 말했다. “예전 영화들은 무작정 외국인이나 강한 상대와 싸우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왜 그와 싸울 수밖에 없는지 자세하게 묘사했다.” 그의 전략은 오랫동안 엽문을 위대한 스승으로 인식한 중화권 사람들에게는 강점일 테지만, 액션의 순수한 쾌감을 즐기고픈 다른 나라의 관객에게는 약점일 것이다. <황비홍>이나 <무인 곽원갑>은 인물의 의지에 대한 설명을 최소화하면서 액션 그 자체를 즐기게 했었으니 말이다. 물론 전편을 즐긴 관객이라면 전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번 속편도 무리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엽문2>는 오는 7월 초에 국내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중요한 건 액션이 아니라 연기다

견자단 인터뷰

견자단은 인터뷰 전날 샴페인을 많이 마셨다고 했다. 홍콩에서 열린 <엽문2> 갈라프리미어 행사 뒤 마련된 리셉션에 붙잡힌 까닭이다. 인터뷰가 끝난 뒤에는 바로 대만으로 날아가 또 다른 행사에 참여해야 되는 일정이었다. 음주와 바쁜 스케줄에도 그는 피곤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기자들쪽으로 몸을 굽혀 앉은 그는 질문마다 성심성의껏 대답해주었다. 언제나 침착함을 유지하는 엽문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엽문> 시리즈는 실존인물을 소재로 했지만 당신의 가치관이 많이 녹아 있는 영화로 알고 있다. 당신이 본 엽문은 어떤 사람인가. =솔직히 진짜 엽문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에도 나오는 엽준이라는 그분의 아들을 통해서 대략적인 설명을 들었지만, 내가 아는 엽문은 이소룡의 사부였고 영춘권의 6대 당사였던 것이 전부다. 아마도 이소룡은 엽문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겠지. (웃음)

-<엽문>은 영춘권을 소개하는 액션을 보여주었다. <엽문2>에서는 어떤 액션을 고민했나. =무술영화에서 권법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관객이 무술을 하고 있는 인물을 믿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나는 영춘권을 고작 몇 개월 배웠다. 이연걸도 <황비홍>에 나오는 홍가권을 전혀 하지 못한다. 성룡도 <취권>을 찍었지만, 내가 알기로는 취권을 잘 모른다더라. 단 그들은 모두 영화의 액션을 자기 스타일대로 살려서 관객에게 실존인물처럼 느끼게 했다. 나 역시 그런 점에서 액션의 스타일을 고민했다. 평소의 나는 농담을 잘하는 편이지만, 그렇지 않은 엽문과 어울려 보여야 했다. 평소 생활할 때 엽문처럼 옷을 입고 차를 마시며 생활했고, 엽문의 스타일을 습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전편에서는 10kg 정도의 체중을 감량하고 10개월 넘게 수련했다고 들었다. <엽문2>는 그때보다는 수월했나. 부상을 입지는 않았나. =어떤 부분은 수월했다. 하지만 관객이 엽문을 좋아했던 만큼 스트레스도 늘었다. <엽문2>에 어떤 새로운 요소를 넣어야 할까란 고민이었다. 그래서 1940, 50년 선배들이 출연한 흑백 광둥영화를 많이 연구했고 모방하려 했다. 그 당시 광둥 사람이 말하는 독특한 스타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상은…. 지금까지 워낙 많은 부상을 당해와서 별일이 아니다. (웃음) 어려운 액션이 아니어서 대역도 쓰지 않았다. 최근에 찍은 <8인: 최후의 결사단>에 비하면 영춘권은 정말 쉬운 액션이었다.

-영화에서 “내가 언제까지 최고일 수 있겠는가?”란 대사가 나온다. 몸을 써야 하는 당신도 고민하는 부분일 것 같다. =내가 만든 대사다. 중요한 건 최고인가, 아닌가가 아니다. 내가 어떤 공헌을 했는지, 무엇을 남겼는지가 중요하다. 내 목표는 좋은 영화를 찍어 남기자는 것이다. <엽문2>를 찍으면서도 <8인: 최후의 결사단> <금의위> <진진> 등의 영화에 참여했다. 영화마다 배역의 색깔이 다르다. 관객에게 “견자단이 이렇게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구나”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내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당신은 <살파랑>이나 <도화선> 같은 현대적 액션영화와 사극 액션을 넘나들고 있다. 어떤 이유인가. =액션배우에 대한 선입견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한 것이다. 사람들은 “액션배우니까 액션만 잘하면 되지 연기까지 잘할 필요가 있냐”고 하는데, 나는 그런 선입견이 정말 싫었다. 물론 액션영화에서 액션은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진 않다. 아무리 훌륭한 기술이 있어도 연기가 안되면 아무것도 안된다. 요즘 관객은 점점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다. <엽문2>에서 선보인 영춘권을 만약 이소룡이 연기한다면 전혀 다른 느낌이 나올 것이다. <도화선>의 마 형사가 영춘권을 해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중요하지 어떤 액션을 선보였는지는 중요한 것 같지 않다.

-홍콩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이 봤을 때, 당신은 홍콩의 마지막 액션배우다. 위기의식을 느끼지는 않나. =액션배우는 약간의 액션만 할 줄 안다면 쉽게 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굉장히 풍부한 경험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나 성룡이나 이연걸도 어려서부터 무술을 연마했다. 그리고 한때 홍콩에서 무술영화가 유행하면서 그때의 경험을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런 경험이 모아져 각자만의 스타일을 만들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젊은 사람들은 무술 배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무술영화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할 수 있다면 <엽문>처럼 영향력이 큰 영화를 만들어서 ‘아 무술영화는 멋진 거구나. 나도 무술을 해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끔 만들고 싶다. 무술학교를 만들 생각은 없다. 가르친다고 해도 사람들이 영화적인 액션을 잘해낼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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