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7명이 얽히는 5가지 에피소드를 그린 영화 <블러디 쉐이크>의 내용은 단 몇줄로 정리하기 어렵다. 첫 인물은 어느 날 지하철에서 한 자루의 총을 얻게 된 샐러리맨 만호(장성원)다. 잠시 후, 그의 총은 정신연령이 5살밖에 되지 않는 삼촌과 함께 살며 꽃집을 경영하는 시각장애인 수경(전혜진)의 손에 쥐어진다. 수경은 소매치기 찬우(성혁)와 말쑥한 신사(김도용)의 만남에서 설렘과 비극을 겪는다. 다음은 신사와 그의 아랫집에서 정육점을 경영하는 지니(박진희)의 이야기고, 이들의 또 다른 비극이 지나고 나면 지니와 그녀가 사랑하는 여자 루피(박선애)의 사연이 소개된다.
이들의 서로 다른 만남은 사랑과 집착, 분노와 질투, 금기된 욕망 등 제각각 다른 감정을 품고 있다. 공통점이 있다면 모든 에피소드가 죽음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영화는 이야기를 하나로 묶는 뚜렷한 선을 배제하고 있지만, 이들의 사연은 현실에서 비롯된 스트레스적 병증에 기인하다는 것으로 수렴된다. 겉으로는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들이 가진 내면, 혹은 무의식 세계는 어두운 심리로 가득할 것이라는 관점이다. 구체적인 서사 대신 일정한 규칙이 없는 꿈속의 서사를 차용하고, 비현실적인 시공간과 CG를 활용한 연출 또한 ‘내면에 대한 탐구’라는 목적에서 비롯된 듯 보인다. 각본과 연출, 제작을 맡은 김지용 감독이 자신만의 시스템으로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독립영화의 분류에 속할 <블러디 쉐이크>는 제작방식과 기술적 완성도 면에서 독특한 시도로 평가받을 법하다. 하지만 그것이 관객의 평가와 일치할지는 의문이다. 영화의 엔딩을 따라갈 명징한 규칙은 없고, 내면의 세계를 포착할 사색의 여유는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