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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서양 무사영화 다시 돌아왔나

칸영화제 개막작 <로빈후드>가 상징하는 의미는

<로빈후드>가 칸영화제의 막을 연다는 건 이젠 거의 잊혀진 서양 무사영화가 다시 돌아왔음을 의미한다. 무사영화는 1950~60년대 화려한 영광의 시대를 거친 뒤 지금은 다소 시들해진 장르로, 유럽이나 캘리포니아보다는 아시아에서 더 확실히 현대화하고 발전된 감이 있다.

우아한 깃털모에 장검을 들고 결투를 벌이는 장면이 나오는 이런 유의 영화를 유럽은 1970년대에 거의 내팽개치다시피한다. 장르 자체가 구시대 유물이 된데다가 그나마 남은 건 TV전용물이 돼버린 것이다. 마틴 스코시즈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등의 뉴 할리우드에서도 서부극이나 탐정영화, 공상과학영화에 전념하면서 검(劍)이나 마차가 등장하는 영화에는 아예 관심이 없어진다. 최근 피터 위어의 <위대한 정복자>나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만든 두개의 패러디물 <조로> 같은 괜찮은 작품이 나오긴 했지만 아시아에서 제작된 작품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에 현대식 특수효과에 비디오게임 영향까지 흡수해 한층 스펙터클해진 무사영화를 만나보게 되는데, 이런 유의 작품 제작엔 단연 중국이 선두에 서 있지만 한국과 일본 역시 만만치 않다. <와호장룡>이 국제무대에서 대대적으로 성공을 거둔 뒤 이제 검도 결투장면이나 공중곡예 장면은 전세계 관객에게는 아시아영화의 대명사가 되다시피했다. 한쪽에선 멸종 위기에 이른 장르, 그리고 다른 한쪽에선 여전히 활기를 띠는 장르…. 이 양면성은 어떤 이유로 설명이 될까? 아마 영화인들의 재능, 또 그들의 역사에 대한 태도와 관련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예를 들면 <영웅>에서는 작품 배경을 분명히 실제 역사상의 시대인 진시황 시대(기원전 2세기)로 설정해놓고도 배우들은 이 산에서 저 산을 훌쩍훌쩍 넘어다니고 물 위를 걸어다니기도 하는데, 이런 전혀 비현실적 결투장면을 찍는 게 장이모 감독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나간 과거 시간대를 재현하고, 거기에 몽상의 세계를 접목하는 건 동양 무술 못지않게 전세계 영화 애호가들이 아시아 무사영화에 열광하게 하는 큰 요인이다. 이처럼 실제 역사가 동화의 형태로 재독할 수 있다는 점은 서양 무사영화보다는 아시아 무사영화에 좀더 넓은 가능성의 장을 마련해준다고 하겠다.

로빈후드 같은 유럽식 영웅이 천장에 있는 샹들리에에 대롱대롱 메달린다거나 높은 탑을 기어오른다거나 하는 건 가능한 일이지만 인간의 한계를 넘지는 못한다. 유럽 근위병들이 베르사유 궁전 위를 훨훨 날아다니는 걸 촬영하는 게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단지 유럽 문화의 관습 자체가 그런 장면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거다. 환상의 세계가 서양 역사에 접목될 수 없다는 이런 이유 때문에 아시아영화에 흔히 나오는 안무법을 유럽영화에 인위적으로 접목시키려던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그런 건 <매트릭스>나 <스타워즈>처럼 현대 문명과는 이미 단절된 그리스 문명이나 켈트족 같은 사라진 문명의 비현실적 세계에서나 가능하다.

그러고 보면 실제 역사적 배경에다 잘 짜여진 몽상의 세계를 그럴듯하게 패러디한 세계에서 전개되는 <캐리비안의 해적>은 분명 이런 유럽 문화 관습의 철칙에 대한 예외다. 이 작품은 좋은 시나리오 덕분에 유령이나 괴물과 싸우는, 전례에 없던 서양식 결투장면을 관객에게 선사해줬다. 관객은 거기에 대거 호응하는데, <캐리비안의 해적>은 장르의 쇄신이 단지 공중곡예나 무용술 혹은 컴퓨터그래픽 문제만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영화인과 시나리오작가, 그들이 바로 상상력을 건축하는 첫 번째 장본인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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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조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