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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균] 힘을 빼고, 하는 듯 마는 듯
이주현 사진 최성열 2010-05-24

배우 이선균

한번은 멀리서, 한번은 가까이서 이선균을 만났다. 두번의 느낌은 사뭇 달랐다. 첫 번째 만남은 <씨네21>이 마련한 토크쇼 자리였다. 이선균은 기하학적 무늬의 카디건에 동그란 안경을 끼고 나타났다. 화보 촬영하며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온 것이라고 했는데 신선했다. 단색의, 그것도 튀지 않는 색의 카디건이라면 몰라도 흰색과 검은색이 만나 규정할 수 없는 무늬를 만들어낸 옷이라니. 두 시간 남짓 진행된 토크쇼에서 이선균은 카디건의 무늬만큼 위트있는 얘기로 장내 분위기를 이끌었다. 정식으로 인터뷰를 하기 위해 두 번째 만남을 가졌을 때 이선균은 낯을 가렸다. 상대방을 무안하게 하는 낯가림은 아니었는데, 친해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 달아오르는 데 시간이 꽤 걸리는 사람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선균이라는 배우가, 매체를 통해 보이는 것보다 훨씬 흥미로운 사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스타> 혹은 최현욱

이선균을 눈여겨본 시점은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파스타>의 이선균이 흥미롭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이선균이 주방에 여자 있는 꼴은 못 보는 ‘마초적인’ 셰프로 등장했을 때 많은 이들은 뜨악해했다. 소리를 질러야만 대화가 된다는 듯이, 짜증과 한심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주방 식구들에게 화를 내는 최현욱이라는 캐릭터와 이선균은 쉽게 포개지지 않았다. 안개처럼 모호한 <파주>가 전작이었으니 <파스타>에서의 이선균의 연기에 ‘적응이 안된다’, ‘부담스럽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욕 많이 먹었고 대사 안 들린다는 얘기도 들었다. 신경이 많이 쓰였다. 나만 잘하면 이 드라마가 잘될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이선균은 <파스타>를 통해 의외의 쾌감을 안겨줬다. 정작 본인은 최현욱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감이 안 와서 막막했다고 하지만. “인물이 다중적이다 보니 연기 톤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처음엔 많이 예민했다. 나보다 주위 분들이 더 불안해했다. 불신을 없애야겠다는 조급함도 많았다.” 드라마 외적인 상황도 그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파스타>를 찍기 전 이선균은 홍상수 감독과 <옥희의 영화>를 촬영하고 있었다. 아내는 임신 중이었다. <파스타> 촬영과 동시에 아기가 태어났지만 집에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이선균이 <파스타>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일단 MBC 월화라는 게 좋았다. 서브 주인공, 공동 주인공은 해왔지만 역할상 부담을 안고 책임지고 가야 되는 건 처음이었다. 두려움도 있었지만 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래야지 앞으로 더 나아갈 거란 생각이 들었고. 사실 내가 (캐스팅 순위) 1번도 아니었다.” 그의 말처럼, 이선균은 주연급 배우였지만 <파주>를 제외하고 혼자서 드라마의 절반을 짊어졌던 적이 없다. 늘 주인공과는 다른 지점에 서 있는 인물을 연기했고, 뜨거운 환호와 관심은 그를 살짝 비껴갔다. <태릉선수촌>의 스포트라이트는 이동경이 아닌 홍민기(이민기)에게, <하얀거탑>의 스포트라이트는 최도영이 아닌 장준혁(김명민)에게 돌아갔다.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도 최한성보다 최한결(공유)과 고은찬(윤은혜)의 매력이 즉각적으로 대중에게 가닿았다. <달콤한 나의 도시> <트리플>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선균은 매 작품 선전했다. 눈썰미 좋은 이들은 이선균의 연기를 눈여겨봤다. 이선균은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일 수 있는 캐릭터를 현실적인 연애담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냈다. 이선균의 이름과 얼굴을 알린 작품들, <태릉선수촌> <커피프린스 1호점> <파스타>에서 그 매력은 도드라진다.

액션보다 리액션

이선균의 연기가 상대 배우를 돋보이게 하는 연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액션보다 리액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끔 어떤 배우들은 리액션을 계산하고, 주는 대로 안 받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때도 많다.” 이선균은 탁구 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이쪽으로 주고 싶을 때 이쪽으로 주고, 저쪽으로 주고 싶을 때 저쪽으로 주고. 그런 게 편해야 한다. <파스타>에서 (공)효진이와는 랠리로 행복하게, 폼 잡지 않고 연기했다.”

이선균은 메소드 연기를 하는 배우도 아니다.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인물을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편이다. <파주>에서의 연기도 그렇다. 이선균은 중식이라는 인물이 트라우마가 큰 인물임에도 “표현 자체는 많이 하지 않았다”고 했다. 캐릭터를 낱낱이 분석해서 완벽하게 자기 몸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여지를 남겨두며 연기했다는 뜻일 것이다. “(박찬옥) 감독님하고 촬영 들어가기 전에 미리 만나서 술자리를 많이 했다. 감독님이 얘기가 없는 거다. 둘이 만나서 십분 정도 침묵했다. 답답해 미칠 것 같더라 그때는. 나중에는 그게 편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편했다. <파주>에서 연기할 때도 굳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을 빼고, 하는 듯 마는 듯하는 연기가 내 성향에 잘 맞다. <파주>가 그런 데 적합한 영화였던 것 같다.”

이선균은 배우라는 직업이 천직인지는 모르겠으나 “연극을 접하고 연기를 하게 된 것이 운명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선균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1기 출신이다. “성향으로 따지면 연기자 성향은 아닌 것 같은데 창조적인 걸 하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성향이 연출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연극원 시험 볼 때도 연출과에 더 가고 싶었는데 연출과는 10명 뽑고 연극과는 40명 뽑아서, 또 연극원 들어가기 전에 다녔던 학교에서 한 게 연기였기 때문에 연극과에 들어갔다(이선균은 한예종 입학 전에 다녔던 대학에서 연극반 활동을 했다). 한예종 졸업할 때도 고민이었다. 연기를 할지 대학원을 가서 연극 공부를 할지. 그런데 지금까지 어떻게 잘 흘러왔다.”

남편 그리고 아빠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된 것도 운명인지 모른다고 이선균은 말했다. 지난해 이선균은 7년 가까이 만난 배우 전혜진과 결혼했다. 현재는 5개월 반 된 아들이 있다. “아이가 태어나니까 아이한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고, 걔를 보살피려면 돈도 더 열심히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담이 많이 생겼다.” <파스타> 이후 집에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그는 조만간 단막극 촬영에 들어간다고 했다. 이후에는 “무겁지 않은 영화”를 찍게 될 것 같다고.

이선균은 연출에 대한 욕심도 숨기지 않았다. “매번 단편영화 한번 찍어봐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잘 안되더라. 연출을 꼭 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그림이 떠오를 때 찍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감독 이선균의 모습도 충분히 기대되지만 이선균에게서 듣고 싶은 말은 따로 있는 것 같다. “구차해지지 않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고, 오랫동안 구차해지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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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스트 허지은·메이크업 안희정·헤어 원미·의상협찬 조르지오 아르마니, 송지오 옴므, D&G, 자라, 버버리 런던, 제너럴 아이디어, A.P.C, 푸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