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밀실살인입니다!” 탐정이 비장하게 선언한다. 초등학생 때는 밀실 선언이 있을 때마다 손에 땀을 쥐었다. 어느새 닳고 닳은 독자가 된 나는, 이제 탐정의 밀실 선언이 떨어지면 ‘또!’ 하고 생각한다. 워낙 많이 읽다보니 (그나마) 상식적으로 생각 가능한 모든 트릭을 경험했고, 남은 건 비상식적인 돌연변이 결론뿐인데, 그건 성에 안 차기 때문이다. 진짜 웃긴 건… 그래도 읽는다는 것이다! 클리셰와 제대로 놀 줄 아는 영민한 작가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겁기 때문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명탐정의 규칙>은 그런 탐정물 클리셰를 ‘놀려먹겠다’고 작정한 책이다. 명목상으로는 미스터리 단편집이지만 화자는 지방 경찰본부 수사1과 경감. 탐정물에서 명탐정 보조역으로 자주 등장하는 유의 인물이다. 그는 하소연부터 시작한다. 조연에게도 고충이 있다. 실수로라도, 탐정보다 먼저 미스터리를 풀면 안된다. 그러니 탐정보다 먼저 미스터리를 푼 뒤 오답만을 제출해야 하는 것이다(100점만큼 맞기 어려운 게 0점이라지). 종종 분위기 띄우는 얼빵한 코미디도 잊지 않아야 한다. 심지어 탐정이 ‘가오’잡는 데 무관심한 등장인물을 다독여서 환호하고 감탄하게 만드는 역할도 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의 화자는 투덜거리면서 탐정의 뒷바라지를 한다. 탐정소설 좀 읽었다는 독자라면 낄낄거리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 수두룩빽빽하다는 뜻. 갑자기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면 등장인물이 먼저 “이번 사건은 그 패턴이 될 것 같네요”라고 한다(등장인물들이 외딴섬으로 가거나 폭설, 폭우 등으로 외부로 나갈 수 없게 되면 꼭 밀실살인이 벌어지지 않던가). 참고로 극중 탐정인 덴카이치는 요코미조 세이시가 낳은 어수룩하지만 인간적이고, 꼭 사람이 다 죽은 다음에야 사건을 해결해내는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를 연상시킨다.
<명탐정의 규칙>은 탐정물 작가의 고충을 토로하는 책이기도 하다. “독자들은 대부분 직감과 경험으로 범인을 간파해낸다”고 일갈한 뒤 독자들의 꿰맞추기 추리의 예를 드는 대목은 명불허전. 예를 들어 독자의 의심은 피해자의 죽음을 유난히 슬퍼하는 사람으로 시작해 의심받을 일이 없는 인물을 거쳐 동기가 있는데 존재감 희미한 인물, 대반전이 가능한 인물을 지나 ‘번외’, 즉 자살이거나 조작, 혹은 전원이 범인인 경우로 달한다. 작가 입장에서는 누굴 범인으로 세워도 독자가 “그럴 줄 알았어”라고 해 버리게 되어 있으니 골치아프다. 결국 탐정은 제멋대로 사건을 해결하는데 갑자기 맥주 캔과 바나나 껍질이 날아온다. “독자다. 성난 독자가 던지고 있는 거야.”
<명탐정의 규칙>은 2009년 봄에 일본에서 드라마로도 방영되었다. 이 경우는, 드라마보다 책이 압축미 면에서 압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