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이후 뉴욕 로어 맨해튼의 경제 부흥을 위해 시작했던 트라이베카필름페스티벌(TFF)이 올해로 9회를 맞아 4월21일부터 5월2일까지 12일간 열렸다. 올해 행사에는 세계 38개국에서 출품한 132편의 작품(장편 85편)이 상영됐다. 이중 박찬옥 감독의 <파주>와 한인 리 아이작 정 감독의 <러키 라이프>가 장편영화 경쟁부문에, 우니 르콩트 감독의 한·불 합작영화 <여행자>가 쇼케이스 부문에, 이용주 감독의 <불신지옥>이 시네마니아 부문에 각각 소개됐다. 정 감독의 <러키 라이프>는 2007년작 <무뉴랑가보>로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은 뒤 처음 발표한 장편이라 눈길을 모았다. 제럴드 스턴의 동명 시에서 영감을 받은 <러키 라이프>는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대학 동창생과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친구들 이야기와 친구가 죽은 뒤 변해가는 남은 사람들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또 개봉을 앞둔 할리우드영화 <슈렉 포에버 애프터>가 선보였고, 2007년 TFF에서 소개된 뒤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택시 투 더 다크 사이드>의 알렉스 기브니의 신작 <마이 트립 투 알 카에다>도 소개됐다. 영화제는 올해도 다큐멘터리 작품이 강세를 보였다. 이중 카바레 드래그 아티스트 조이 아리아스와 퍼펫티어 베이즐 트위스트를 담은 바비 쉬한 감독의 <아리아스 위드 어 트위스트: 더 다큐판타지>, 영국 희곡작가 안드레아 던바의 이야기를 담은 클리오 바나드 감독의 <아버>, 삼류 가십 프로그램과 수많은 성형수술로 쇼비즈니스계에서 놀림감이 됐지만 76살의 나이에도 꿋꿋이 살아가는 조안 리버스의 이야기를 그린 리키 스턴과 애니 선드버그 감독의 <조안 리버스: 어 피스 오브 워크>, 세계적인 헤어드레서의 이야기를 그린 크레그 테퍼 감독의 <비달 사순 더 무비>, 70년대 그룹 ‘러시’의 이야기를 다룬 스콧 멕파디엔과 샘 던 감독의 <러시: 비욘드 더 라이티드 스테이지> 등이 주목받았다. 장편영화 중에는 터키계 독일인 감독 페이스 애킨의 로맨틱 음식코미디 <솔 키친>을 비롯해 닐 조던 감독의 <온딘>, 니콜 홀로프세너의 <플리스 기브>, 마이클 윈터보텀의 <킬러 인사이드 미>, 브리얀테 멘도사 감독의 <롤라>, 조시 스턴필드 감독의 <메스카다>, 폴 프레이저 감독의 <마이 브러더스> 등도 관객의 큰 호응을 얻었다.
수상 결과는 장편영화 부문에 페오 알라대그 감독의 <웬 위 리브>, 장편다큐멘터리 부문에 다운증후군 남녀의 사랑을 그린 알렉산드라 코디나 감독의 <모니카 & 데이비드>, 장편영화 감독상에 <도그 파운드>의 킴 샤피론 감독, 장편다큐멘터리 감독상에 <아버>의 클리오 바나드 감독이 뽑혔다. <갱스부르, 난 나보다 더 당신을 사랑해요>의 에릭 엘모스니노가 남우주연상을, 여우주연상은 <웬 위 리브>의 시벨 케킬리, 관객상에는 스콧 멕파디엔과 샘 던 감독의 <러시: 비욘드 더 라이티드 스테이지>, 뉴욕장편영화상에는 데이나 애덤 셰피로 감독의 <모노가미>, 뉴욕장편다큐멘터리상은 C. 스콧 윌리스 감독의 <우드맨스>가 수상했다.
VOD 서비스를 시작했다
영화제 프로그래밍 디렉터, 데이비드 곽 인터뷰
트라이베카필름페스티벌과 동거동락해온 프로그래밍 디렉터 데이비드 곽. 그는 과거 뉴욕의 뉴페스티벌과 LGBT페스티벌에서 활동했으며, TFF에서는 상영작 선정은 물론 신인감독들이 준비 중인 프로젝트를 가지고 100여명의 영화 제작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트라이베카 올 액세스 프로그램 등을 개발했다. 영화를 지역과 장르로 나누기보다 하나의 작품으로 본다는 그를 만났다.
-올해가 벌써 9번째다. =그러게, 참 빠르다. 올해 행사도 벌써 후반부다. 첫주에는 프리미어 행사가 몰려 있어서 초긴장 상태였다. 지금은 관객과 함께 영화를 보기도 하고, 반응도 살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필자도 3회부터 TFF를 취재했는데, 관객층이 다양해졌다. =맞다. 이제는 외국에서도 많이 찾아오고, 국내에서도 뉴욕이 아닌 다른 주에서 많이들 찾는다. 아예 휴가계획을 TFF를 중심으로 짜서 오는 관객도 있을 정도다.
-몇해 전 다큐멘터리 <스퀴즈박스>의 감독들을 인터뷰했다. 그들이 당신의 도움이 없었다면 작품을 끝내기 힘들었을 거라던데. =(웃음) 모든 작품에 그렇게 피드백을 해주지는 못하는데, 오랫동안 감독들을 알아왔다. <스퀴즈박스>에서 가능성도 보았고. 출품할 수 있는 기회는 단 한번뿐이니까. 솔직히 말하면 감독들을 ‘푸시’했다고나 할까. 2002년 여름부터 2008년 프리미어까지 오랫동안 진행과정을 지켜봤다.
-<스퀴즈박스> 등 작품성있는 영화들이 배급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트라이베카는 이런 작품을 위한 계획이 있나. =트라이베카 필름이라는 배급사를 차렸다. 영화제 기간 중인 4월21일부터 케이블TV의 온 디멘드 채널(VOD)을 통해 무료와 유료로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총 12작품을 방영 중인데, 이중 미국 내 배급 판권을 구입한 10편의 영화가 있고, 또 이중 7편이 올해 영화제에서 소개됐다. 3편은 지난해에 소개된 작품들이고. 영화제가 끝나면 뉴욕과 LA에서 극장 개봉하고, 이후 다른 도시로 확대 개봉할 계획이다. VOD는 첫 시도다. 관객이 영화를 보는 방법이 계속 변하고 있는데, 우리도 변해야 한다고 본다. 필름페스티벌도 함께 전진하고, 관객에게 자주 접할 수 없는 작품들을 소개하는 역할도 필요하니까.
-TFF, 처음과 현재를 비교했을 때 큰 변화가 있다면.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트라이베카필름과 트라이베카필름페스티벌 버추얼(TFFV)이다. TFFV는 온라인영화제로 아직 배급사가 없는 8편의 장편과 10여편의 단편들이 소개됐다. 배급사를 찾는 작품들에 플랫폼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또 영화제에 직접 참여할 수 없는 관객을 참여시키는 것도 목표다. 상영 뒤 진행된 감독과의 질의응답이나 패널 토론, 레드카펫 커버리지 등도 라이브로 소개됐다. 영화제처럼 인기상 투표도 참여할 수 있다.
-찾는 특정한 작품들이 있나. =난 모든 장르의 영화를 좋아한다. 나 자신을 특정 장르에 가두고 싶지 않아서다. 페스티벌을 위해서도 다양한 영화를 소개하도록 노력하는 편이다. 영화제에는 신인감독을 위한 ‘디스커버리’ 섹션과 뉴욕과 연관있는 작품을 선정하는 분야가 있기는 하지만, 트라이베카는 국제영화제이기 때문에 월드시네마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올해 3편의 한국영화가 소개됐다. =<여행자> <불신지옥> <파주>였다. 한국영화 외에도 홍콩, 일본, 베트남, 필리핀, 인도영화들도 소개됐다. 아시아영화 팬들이 제법 많아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려고 한다. 개인적으로도 아시아를 한 섹션으로 보기보다는 국가별로 작품을 보는 경향이 있다.
-박찬옥 감독은 <질투는 나의 힘>으로 2003년에도 참여했다. =물론 <파주>로 영화제에 초청했지만, 박찬옥 감독 작품이라 특히 신경을 쓴 것도 사실이다. 과거 영화제에 참여했던 감독 중 올해 33명이 다시 참여했다. 9살밖에 안된 페스티벌치고는 좋은 기록 아닌가?
-페스티벌 때문에 여행을 많이 다니나. =늘 여행을 해야 한다. 매년 부산영화제에도 가는데, <질투는 나의 힘>와 <파주>도 부산에서 본 작품이다. 부산 외에 다른 아시아영화제에는 아쉽게도 참석하지 못해 부산영화제에 도움을 많이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