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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까지 파헤쳐진 가진 자들의 본성 <하녀>
이화정 2010-05-12

김기영 감독의 원작이 제작되던 당시, 1960년대 대한민국의 하녀는 리얼리티였다. 피아노가 있는 이층집, 단란한 가족. 쪽방에 거처하며 집안일을 돕는 하녀는 이들의 ‘행복’을 완성하는 필요조건이었다. 부를 최상의 가치로 여기던 당시 한국인에게 이 정도는 노력하면 가질 수 있는 실제의 ‘부’였다. 2010년, 대한민국에 ‘하녀’는 사라졌다. 일당제 가사도우미는 물리적 일은 하되, 더이상 예전 하녀를 하녀라 부르던 시절에 보았던 주종의 관계에 매이지 않는다.

임상수 감독은 이렇게 이미 사라진 이름 ‘하녀’를 스크린에 불러온다. 원작의 ‘있을 법한’ 부유층에서는 설명하기 힘든 죽은 역할인 하녀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최상의 부를 재현하기로 한다. 주말드라마에서 조악한 소품과 세트로 구현되던 이른바 ‘재벌’의 실체는 제작비 31억원이라는 물량을 투여받고 화면에 제대로 구현된다. 한국식 된장찌개가 놓인 밥상도, 여느 집안의 TV 시청 소음도 완벽히 차단된 공간. 유럽의 대저택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데커레이션한 음식과 클래식 음악, 가족의 절제된 애티튜드는 오늘날에도 하녀가 기거할 수 있다는 완벽한 판타지를 제공한다.

은이(전도연)는 비록 식당보조였지만, 유아교육과를 다닌 전적(!)으로 이 대저택의 하녀 채용에 합격한 여자다. 쌍둥이를 임신한 안주인 해라(서우)의 수발을 들고, 해라의 딸을 보살피고 주인집 남자 훈(이정재)의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하녀의 업무. 은이와 먼저 이 집에 들어와 세월을 보낸 나이 든 하녀 병식(윤여정)은 이 업무를 공유한다. 하녀의 존재로 이 집의 서열은 정확히 집주인 남자와 안주인, 나이 든 하녀 병식, 신참 하녀 은이로 나뉘어 있지만, 훈이 은이와 섹스를 하면서 이들의 질서에도 혼란이 오는 듯하다.

현대의 하녀는 이 지점부터 정확하게 정의된다. 주인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이유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원작의 하녀는 그 시대의 유물일 뿐이다. 불순물을 처리하는 장모와 딸의 대사나 행동, 그리고 돌변하는 남자의 행동으로, 오늘날 하녀가 가진 무력한 지위는 명백해진다. 스토리가 주는 완벽한 서스펜스와 스릴을 즐길 수 있었던 원작과 달리 임상수 감독이 <하녀>를 통해 주려는 서스펜스는 이 밑바닥까지 파헤쳐진 가진 자들의 본성이다. 그 결과, <하녀>는 후반부에 이르러 장르적인 쾌감에 봉사하는 역할을 부러 포기해버린 듯하다. 마지막까지 이렇다 할 반격을 가하지 못하는 은이 캐릭터를 설명할 길은 여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영화에서 한번도 ‘하녀’라고 불리지 않지만, 결국 권력과 부에 찍소리 내지 못하는 하녀의 존재는 어쩌면, 거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의 밑바닥에 속할 수밖에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진짜 호칭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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