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달라이 라마’라고 하면 뿔테 안경과 의상이 워낙 익숙해서 잘 아는 사람 같지만 정작 깊이 알고 있는 건 없어요. 어떻게 달라이 라마가 됐는지도 모르고요. A. 1935년 티베트 동북부 탁체르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평범한 아이였습니다. 13대 달라이 라마인 ‘툽텐 갸초’가 열반하자 1937년 티베트의 섭정관 ‘레팅 린포체’는 달라이 라마의 환생을 찾기 위해 고승들을 전국으로 보냈죠. 티베트 사람들은 두세 살 무렵에 전생을 기억한다고 생각하는데, ‘라모 톤둡’이라는 아이가 린포체를 보자마자 13대 달라이 라마의 유품인 염주를 달라고 했고, 린포체가 ‘세라 사원의 주지’라는 것도 맞췄다고 하죠. 그래서 라모 톤둡의 가족을 티베트 수도 라싸의 포탈라궁으로 불렀고 ‘텐진 갸초’라는 새 이름을 부여했죠. 그렇게 1940년 2월 22일 라모 톤둡은 14대 달라이 라마로서 즉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Q2. 14대 달라이 라마에 관한 영화라면 마틴 스코시즈의 <쿤둔>(1997)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쿤둔’이란 무슨 뜻이죠? 달라이 라마와는 다른 건가요? A. <쿤둔>은 5살의 라모 톤둡이 달라이 라마로 즉위하는 과정과 그 이후 이야기를 상세하고 그리고 있습니다. 그가 달라이 라마로 즉위하자 사람들은 그를 ‘고귀한 존재’ 혹은 ‘살아 있는 부처’라는 뜻의 ‘쿤둔’이라 불렀습니다. 그에 대한 티베트 사람들의 최고의 존경을 담은 말이죠. 그렇게 달라이 라마는 세습되거나 투표로 선출되는 것이 아니라 전임 달라이 라마가 열반하면 그 환생자를 찾아 옹립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달라이 라마’란 고유명사이기도 하고 직위를 나타내는 보통명사이기도 하며, 티베트에서는 종교적 수장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최고지도자이기도 합니다.
Q3. 달라이 라마가 인도의 다람살라로 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금도 라싸에서는 중국정부의 뜻에 따르지 않는 자는 신앙을 버리라는 군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고문과 투옥을 감수해야 한다죠. 그렇게 해마다 3천여명의 티베트인이 고향을 떠나 히말라야를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A. 1949년 티베트인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임을 호응하지 않자, 결국 1950년 마오쩌둥은 티베트를 침공했고 15세의 어린 쿤둔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렸습니다. 쿤둔은 백성들의 안전을 위해 중국정부가 내미는 17개 항의 조약을 승인했고, 티베트는 공식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가 됐습니다. 하지만 1959년 라싸에서 민중봉기가 발발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자 결국 인도로 망명, 인도 네루 수상의 도움으로 북부 다람살라 지역에 티베트 난민정부를 수립하게 됩니다. 1963년 티베트 헌법을 수립하는 한편 여러 학교, 공장 등을 설립해 티베트 문화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비폭력주의를 견지하면서 198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다람살라는 만년설이 덮인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지만 티베트에서 건너온 사람들에게 그곳은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닌,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더 서글퍼지는 공간입니다.
Q4. 그럼 <선라이즈 선셋>에서 현재 달라이 라마가 중국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는 뭐죠? A. 세계는 인구 과밀로 인한 여러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인 중국과 인도가 티베트를 놓고 긴장 상태에 있는 것은 인류에게 심각한 위협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는 완전한 독립은 바라지 않고 편입된 상태여도 좋으니 자치권만이라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티베트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인도와 중국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우호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지금 하나의 독립체를 이룬 세계가 산적한 많은 문제를 자연스레 해결할 수 있을 거란 얘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