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차거부라도 해야 할 판이다. 비행공포증이 있다며 도쿄에서 서울까지 택시를 타겠다는 손님(야마다 마사시)이 있다. 홍대에서 열리는 록밴드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란다. 그러나 택시 기사 야마다(야마자키 하지메)는 한치의 고민없이 손님을 태운다. 배짱도 이런 배짱이 없다. 이것이 <도쿄택시>의 출발점이다. 아무 생각이 없을 것 같은 택시 기사를 연기한 야마자키 하지메, 낯익은 얼굴이다. 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조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기억이 날 법도 하다. 드라마 <고쿠센2>, <유한클럽>(2007), <관료들의 여름>(2009), 영화 <태양의 노래>(2007), <라스트 러브>(2007) 등 수많은 작품에서 조연으로 활약했던 그가 김태식 감독의 <도쿄택시>로 영화 첫 주연을 맡았다.
-무대 출신이라 들었다. =초등학생 때 연극에서 주인공만 맡았다. 선생님에게서 “야마자키는 학예회와 운동회 때만 빛나는구나”라는 얘길 들을 정도로. 고등학생 때도 연극부에서 활동했고, 대학에서는 공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극단에 시험 쳐서 붙었다. 그러나 부모님의 반대로 들어가지 못했고 1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 다음해 와세다 소극단에 들어갔다. 그게 연기의 첫 시작이었다. 단계별로 극단을 밟아가다가 33살 때 TV드라마에 데뷔했다.
-<도쿄택시>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제의가 들어왔다. 600만명의 시청자가 즐겨보는 뮤직 온 채널의 음악프로그램에서만 방영되는 영화로, 한국인 감독과 한국 로케이션이라더라. 가벼운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봤는데 재미있었다. 그리고 감독의 전작인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영화는 물론이고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해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나리오의 어떤 점이 재미있었나. =택시를 타고 도쿄에서 서울로 간다는 설정 자체가 재치있었다. 일본인 감독들이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다. 민방위 훈련처럼 일본에는 전혀 없는 풍경 등도 재미있었고. 특히 택시 추격전은 일본에서는 촬영 허가가 나지 않는데 부산에서는 다 되더라. 어떻게 찍었는지 모를 정도로 기분이 묘했다.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조연만 맡다가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다. =무대에서는 주연을 많이 맡았다. 매년 연극을 3편씩 한다. 올해도 당장 7, 9, 12월에 작품들이 잡혀 있다. 그 사이에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다. 여러 역할을 맡아왔지만 <도쿄택시>는 내 기분을 처음부터 끝까지 가지고 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좋았다. 만들어가는 보람도 있었고. 상대역인 야마다 마사시가 첫 주연이라 선배로서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힘들기도 했다.
-영화는 당신과 상대역인 록가수 야마다 마사시의 호흡이 중요하다. =맞다. 두 사람이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촬영 전에 미리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시간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정말 어색했다.
-그럼 언제부터 가까워지게 된 건가. =경주 촬영을 마치고 부산에서 3~4일 정도 찍으면서 서서히 알아갔다. 그때 그 친구가 노래를 불렀는데, 그것을 들으면서 ‘아, 얘가 이런 아이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 촬영 때부터 이 친구가 자신의 언어로 연기를 하기 시작했고, 영화 속의 두 사람처럼 우리 역시 가까워졌다.
-김태식 감독과의 작업 역시 어색했을 것 같다. =정형화된 연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더라. 미리 준비해온 것을 현장에서 갑자기 다른 걸로 바꾸더라. 일본 현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만큼 자연스러운 연기에 대한 고집이 있었다.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싶을 정도로. 그리고 상황 판단이 굉장히 빠르더라. 도쿄 에피소드를 과감하게 줄이고 바로 부산으로 넘어가는 결단력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출연 전에 택시를 몰아본 적이 있나. =없다. (웃음) 일본에서는 배우들에게 운전을 시키지 않는다. 다칠 위험이 있으니까. 그래서 렉카에 출연 차량을 싣거나 하더라도 짧은 거리만 한다. 대부분 스턴트맨이 대신하지. 그런데 한국에 오니까 직접 해야 되더라. 그나마 도로가 한산한 경주부터 시작해서 다행이지, 서울부터 운전했다면 무서웠을 것이다.
-영화 속 두 주인공처럼 실제로 부산, 경주를 거쳐 서울로 향한다. 어떻게 보면 여행을 한 건데, 한국을 달려보니 어떻던가. =시골 풍경은 일본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건물만 보면 한국임이 느껴졌다. 간판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국 운전자들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끼어드는 감각이 뛰어나더라. (웃음) 적응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이제 일본에서 누구보다 끼어들기를 잘할 것 같다. =아, 그런가. 굳이 얘기하자면 한국의 운전 문화는 오사카의 그것과 닮은 것 같다. (웃음)
-메이지유신 당시 개혁파 사카모토 료마의 전기를 다룬 <NHK> 대하사극 <료마전>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극중에서 맡은 료코이 고구스는 당시 개혁파였다. 워낙 유명한 사카모토 료마와 달리 료코이 고구스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잘 알려지지 않다. 그런데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아직까지도 많이 남아 있더라. 료코이 고구스 역에 캐스팅되자마자 그들에게 전화를 많이 받았다. “우리 군주를 야마자키상이 연기하게 되어 기쁘다”라며. 그래서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다음 작품은 뭔가. =5월 중순부터 들어갈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신작이다. <주간 아사히>를 만드는 잡지쟁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 작품에서 <주간 아사히>의 편집장을 연기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