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 LA로 찾아왔다. 지난 4월22일부터 25일까지 할리우드의 이집션 극장, 차이니즈 만 극장, 루즈벨트 호텔에서 ‘TCM(Turner Classic Movie)의 클래식영화제’가 열렸다. 영화제 기간 동안 LA는 미국 전역에서 몰려든 클래식 영화 팬들로 가득했다. 이번이 첫해인 TCM 클래식영화제는 사람들의 머리에 자리잡고 있는 할리우드의 전통적인 이미지에 가장 근접해 보이는, 가장 할리우드다운 행사였다. 영화제 프로그래머 찰스 타베시가 말하는 첫해의 주제는 ‘할리우드의 역사’다. 할리우드영화뿐만 아니라 할리우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유럽의 영화들까지 총 53작의 장편, 클래식 단편영화 및 단편애니메이션이 대형 스크린에서 팬들과 다시 만났다.
매회 출연배우와 특별 게스트의 작품 소개와 함께 상영이 시작되어 멋과 깊이을 더한 이번 영화제는, 1954년작 <스타 탄생>을 개막작으로, 올해로 50주년을 맞는 <네 멋대로 해라>, 할리우드의 이야기를 담은 명작 <선셋 대로>, 아카이벌 프린트로 상영되는 <카사블랑카> <성공의 달콤한 향기> <미드나잇 카우보이> <고독한 영혼> <석양의 무법자> 등이 상영됐고, 삭제된 20여분이 복원된 <메트로폴리스>를 폐막작으로 화려한 막을 내렸다. 특히 단편애니메이션의 경우, 오늘날의 관객이 당시 시대적인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영화 역사학자인 도널드 보글의 코멘트가 덧붙여졌으며, 영화제작에 대한 컨퍼런스 및 만찬 행사 역시 계속됐다.
내실있는 프로그램만큼이나 클래식 영화 팬들의 소리소문없는 호응이 인상적이었던 제1회 TCM 클래식영화제에서는 500달러에서 2천달러에 이르는 입장권이 모두 팔렸으며, 모든 상영작의 관객석이 꽉 차 폭발적인 인기를 증명했다. 각지에서 할리우드를 찾은 팬들은 존 휴스턴 감독의 딸이자 배우인 안젤리카 휴스턴, 배우 토머스 커티스, 엘라이 월러크, 노먼 로이드 등 할리우드 산증인들이 회고하는 할리우드의 과거에 주의깊게 귀기울였으며, 대형 스크린에서 다시 보는 옛 영화들의 매력에 푹 빠져든 모습이었다. 대부분이 40대 관객이었으나, 20~30대 관객도 적지 않았다. 입장권이 있어도 한참 줄을 서야 관람이 가능했으며, 대기자 번호표 5번을 들고 한 시간 반을 기다렸지만 끝내 영국산 필름누아르 <No Orchids for Miss Blandish>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놓치고 말았다. 클래식 영화 팬들 사이에서 줄을 서다가 만나게 된 사람들의 모습은 샌디에이고 코믹콘에서의 모습과 거의 흡사했다. 많은 관객이 이번 영화제를 위해 타도시에서 할리우드를 찾아와 근처 호텔에서 머물며 하루에 서너편을 감상하는 모양이었다.
4월25일 일요일 아침 9시 차이니즈 만 극장. 한 시간 반 동안 줄을 선 뒤 간신히 <석양의 무법자>를 볼 수 있었다. TCM 채널의 영화 인기 호스트인 로버트 오스본과 올해로 94살이 된 배우 엘라이 월러크가 상영 전 무대에 올랐다. 엘라이 월러크는 <석양의 무법자>에서 자신이 못생긴 녀석이 될 줄은 몰랐다며 오래된 기억들을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했다. 스파게티 웨스턴 촬영장에서 누구보다 심각했던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에서부터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의 작업일화, 촬영장에 막 도착한 그에게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바로 연기를 주문하던 존 휴스턴 감독을 이야기하며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내던 그는, 자신의 생일날 받았다는 멜로디 카드를 슬그머니 끄집어내어 마이크에 가까이 댔다. 마이크를 통해 극장 안에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전설적인 주제가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박수 갈채. 클래식영화제는 영화가 관객에게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따스한 행사였다.
영화를 보고 밖으로 나서자 북미에서는 첫선을 보이는 무성영화 <메트로폴리스>의 복원판을 관람하기 위한 줄이 할리우드 대로를 따라 이어져 있었다. 다시 보게 하는 힘을 가진 영화. 그게 클래식영화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