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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영국 하위문화의 발칙한 맛

4월30일 폐막한 제9회 런던 이스트 엔드 영화제

<브론코 불프로그>

독립-컬트영화가 런던을 장악했다. 지난 4월22일 독립영화와 컬트영화를 사랑하는 런던 영화팬들을 위한 제9회 런던 이스트 엔드 영화제가 시작됐다. <타임스>로부터 런던을 대표하는 5대 영화제 중 하나로 꼽힌 올해 이스트 엔드 영화제는 1969년 발표된 컬트영화 <브론코 불프로그>(Bronco Bullfrog)가 열어젖혔다. 개막 행사에 참석한 바니 플라츠-밀스 감독은 상영에 앞서 가진 짧은 인터뷰에서 “1960~70년대에 영국 동부에 살던 노동자 계급의 고단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싶었다”며 “40여년 만에 HD 고화질로 복원된 작품을 관객과 함께 커다란 스크린으로 볼 수 있어 매우 기쁘다”고 감회를 밝혔다.

<브론코 불프로그>는 런던 동쪽 스트라포드 지역에 살며 마약과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됐던 10대 청소년들의 성장기이자, 동시에 주인공 델과 아이린이 부모의 반대를 피해 사랑의 도주를 벌이는 귀여운 러브 스토리다. 같은 해 데뷔한 영국의 아트록 그룹 오디언스(Audience)가 부른 사운드트랙은 영화가 아닌 음반만을 찾는 관객이 있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개막식 파티의 주요 배경음악으로 사용돼 관객의 큰 호응을 얻었다.

2주 앞으로 다가온 영국 총선을 겨냥해 마련한 새로운 섹션 ‘Riot, Race and Rock & Roll’에 속한 작품들도 이스트 엔드 영화제의 주요 볼거리 중 하나였다. 1979년 영국 총선 하루 전날 벌어지는 일을 다룬 동명의 연극을 영화화한 <SUS>는 현재까지도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인종차별에 대해 심도있게 고민하는 작품이다. 앨런 마일스의 다큐멘터리 <누가 보안관을 쐈는가>(Who Shot the Sheriff)는 1970년대 영국의 국민전선에 맞서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록’(the Rock against Racism) 캠페인을 벌인 영국의 록, 레게, 팝 음악가들의 고군분투를 다룬 작품이다. 영화 상영 뒤 열린 토론회에는 영국의 유명 영화감독인 거린다 차다와 돈 레츠, 배우 리즈 아메드가 참여했다.

총 9일 동안 200여편이 넘는 장·단편영화를 선보인 런던 이스트 엔드 영화제는 지난 4월30일 폐막했다. 전진하는 영국 하위문화의 발칙한 맛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이스트 엔드 영화제는 진정 영국적인 페스티벌임에 틀림없다.

<안나 비긴스>의 벤 오코너 감독 인터뷰 장편을 만들어보니 자본이 큰 짐이더라

벤 오코너는 원래 단편으로 유명한 영국 감독이다. 올해 영화제에서 <안나 비긴스>(Ana Begins)로 첫 장편영화에 도전한 그를 직접 만나봤다.

-첫 장편영화다. 장편과 단편을 만들 때 어떤 차이가 있었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자본인 것 같다. 2005년 시놉시스가 완성됐다. 하지만 내 수중에는 2만파운드밖에 없었다. 촬영은 한달여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프리 프로덕션이라든지 편집 과정 등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혼자서 대부분의 작업을 했던 단편과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왜 날씨가 안 좋기로 유명한 데번을 촬영지로 골랐나. =바로 그 때문이다. 아버지가 아직 그곳에 살고 있어서 내가 데번을 좀 안다. 나는 바람 부는 데번의 날씨가 여주인공 캐릭터를 묘사하는 데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남겨진 여인이 가진 외로움은 결코 대사로 전달할 수 없다. 오직 예측 불가능한 이곳의 바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예측 불가능’한 날씨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을 것 같다. =그렇다. 날씨의 변화에 따라 촬영하는 장면이 그때그때 바뀌기도 했다. 해, 해일, 눈, 소나기, 이슬비가 하루에 번갈아가며 쏟아진 날도 있었다. 아, 그건 정말 악몽이었다.

-등장인물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장면들이 자주 띈다. 떠나는 안나를 바라보는 프레이저의 얼굴이 유독 뇌리에 남는다. =대사로 일일이 설명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으니까. 변화된 삶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애인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차마 붙잡을 수 없는 그 상실감을 관객이 함께 느꼈으면 했다.

-대본도 직접 썼다고 들었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경험에서 영화의 아이디어가 시작됐다.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에 선 순간,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새로운 출발점’인지 잘 인식하지 못한다. 과연 이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내릴까, 이런 점이 궁금했다.

-다음 작품 계획은. =준비 중이다. 현재는 스크립트만 나온 초기 단계다. 이야기가 좀 복잡한 로드무비가 될 것 같다. 음, 사실 이번 작품은 사람들이 돈을 내고 보러 오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작업하고 있는 중이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