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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이 미국인의 마음속에 남긴 황폐함 <브라더스>
이화정 2010-05-05

짐 셰리던 감독에게 가족은 절대적인 이 지구상의 구성원이다. 뇌성마비로 뒤틀린 몸을 간직한 남자에게 <나의 왼발>의 어머니는 사랑의 진정한 모습이었고, 폭탄테러 혐의로 징역 15년을 살던 아들에게 희생을 감내했던 <아버지의 이름으로>의 아버지는 용서의 다른 이름이었다. 가족은 이 험난한 세상을 뒷받침해줄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브라더스>는 짐 셰리던 감독이 그간 전개해왔던 소중한 가족의 의미를 끝까지 밀어붙인 아주 어려운 질문이다. 영화는 한 남자 샘(토비 맥과이어)과 그의 사랑스런 아내 그레이스(내털리 포트먼), 그리고 두딸의 행복한 생활로 말문을 연다. 그러나 군인인 샘이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을 가고, 전사 소식이 들리면서 이 가족의 행복도 산산이 깨진다. 실의에 빠진 가족을 보살피며 형의 빈자리를 대신해줄 동생 토미(제이크 질렌홀)의 등장으로 <브라더스>는 얼핏 멜로드라마의 구성을 띠는 듯도 하다. 그러나 짐 셰리던은 죽은 줄 믿고 있었던 샘을 다시 살아 돌아오게 하면서 그가 애초 가졌던 가족에 대한 질문을 본격적으로 꺼내놓는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나섰던 전장, 그 전장에서 정작 존재의 밑바닥을 경험한 그에게 다시 돌아온 가족은 더이상 예전의 따뜻했던 보금자리가 아니다. 가족에게 돌아오기 위해 샘이 치러야 했던 인간성의 말살은 결국, 그 자신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은 현대의 미국이 겪고 있는 가장 따가운 상처가 되어 가족의 현재를 짓밟는다. 전쟁은 포화 속에서만 진행되는 과거의 불행이 아닌, 끝난 뒤에도 쉽사리 끝날 수 없는 현재진행형의 끔찍한 불행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가족에 대한 순진한 의무감으로 시작된 전장이 미국인의 마음속에 남긴 황폐함. 짐 셰리던 감독은 형제와 아내로 얽혀든 애정관계를 통해 실타래처럼 꼬여서 좀체 풀기 어려운 전쟁이 남긴 고통을 찬찬히 묘사한다. 덴마크의 수잔 비에르 감독이 연출한 동명의 덴마크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짐 셰리던 감독은 원작의 사실적인 묘사보다 드라마적인 구성을 통해 우회적인 답변을 선택한다.

풀기 어려운 숙제 같은 영화를 지켜보게 만드는 건 달라진 토비 맥과이어의 모습이다. 몰라보게 홀쭉해진 모습으로 그는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샘의 내면을 형상화한다. <스파이더 맨>의 순진한 눈빛을 벗어던진, 토비의 퀭하고 서늘한 눈빛은 어쩌면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가장 정확한 전쟁의 공허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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