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식 SF는 TV드라마 <닥터 후>로 익숙하다. 우주를 종횡무진하며 허허실실 농담을 진담처럼 던지는 스타일. <대수학자>도 그렇다. 첫 농담의 절정은, 가마솥처럼 생긴 인공지능을 둘러싸고 여러 종족들이 모여 우주 전쟁을 논하는 회의장면이다. 인공지능은 말한다. 드웰러 목록을 둘러싸고 전쟁이 일어난다고. 우주는 웜홀로 순간이동해야만 서로 연결된다. 고로 행성계 근처에 웜홀이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하다. 마치 KTX가 우리 동네에 생기느냐 마느냐처럼. 그런데 드웰러라는 엄청나게 오래 살고, 믿을 수 없이 똑똑하며, 참을 수 없이 제멋대로인 종족이 전 우주를 연결할 수 있는 200만개의 웜홀 좌표를 안다는 것이다. 세상에, 전 우주의 연결? 수억년 사는 종족?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쏭달쏭한데 화룡점정 개그 한방이 있으니, 바로 인공지능이 가제트 형사가 받는 메시지마냥 일정 시간이 지나면 폭파한다는 사실. “우린 모두 완전히 돌아버린 외계인들과 초강력 무기들과 우라지게 별나고 정신나간, 은하계 역사와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고 있어!”
이 말도 안되는 이야기는 말도 안되게 밀도 높은 수다로 정신없이 이어진다.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는 드웰러 목록을 찾기 위해 드웰러 연구가 파신 탁은 가스행성 나스퀘론으로 향한다. 시간을 초월해 사는 존재들이 으레 그렇듯, 드웰러는 아주 매력적인 데가 있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빙빙 도는 가스폭풍 속에서 사는, 커다란 수레바퀴 한쌍처럼 생긴 생명체. “정신착란을 일으킬 만큼” 어마어마한 문명을 이루었지만 정작 그걸로 뭔가 해보겠다는 야심은 전혀 없이 ‘꼴리는 대로’ 산단다. 자신들의 목숨조차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들이라, 개체 수 조절을 위해 자식 사냥도 서슴지 않는다. 전쟁 같은 비상 상황에도 새 전투복 입어보고 파티 여는 데 몰두하는 이 기막힌 아나키스트들, 파신 탁은 웜홀 좌표의 비밀을 손에 쥔 ‘150만살 먹은 신동’ 드웰러 발세어를 만나려고 이들의 눈치를 살피며 여행한다. 그렇다고 너무 웃기기만 하지는 않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언 M. 뱅크스는 인류학, 정치학, 역사학을 손 위에 올려놓고 마음껏 주무르며 우주를 거울 삼아 인간사회를 비판한다. 농담은 진담처럼, 진담도 진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