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와 스폰서의 관계를 다룬 <PD수첩>은 한마디로 대박이었다. 탄탄한 플롯과 풍성한 캐릭터, 그리고 생생한 리얼리티까지 이 프로그램은 대박영화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탄탄한 연기력(박 검사님, 음험한 대사 톤 최고예요!)과 빽빽한 긴장감(‘큰집’이 또 한번 ‘조인트’를 벼르는 거 아닌가 하는)까지 받쳐주니 감동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현실이 이처럼 박진감 넘치고 역동적이다보니 한국에서 현실풍자 영화를 만든다는 건 힘든 일이다. 과거 송능한 감독이 한국사회를 풍자하는 <38광땡>을 준비하다 포기한 것도 그즈음 터진 최규선 게이트 때문이었다. 당시 송 감독은 “현실이 내 상상력을 넘어선다”고 말하며 캐나다로 떠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니 한국에서 제대로 된 정치영화나 사회스릴러가 나오지 않는다며 영화인만 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도 스폰서의 실체를 본 적 있다. 일간지에 다니던 시절, 한 선배가 후배들에게 횟집에서 술을 사줬다. 그는 옆자리에 앉은 출판사 간부를 일컬어 “내 스폰서”라고 불렀다. 절반은 농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계산은 머리가 훤한 그 간부님이 했으니 나머지 절반의 진실은 스폰서가 맞았을 거다. 그때 그 선배는 후배들에게 가끔은 좋은 것도 먹여줘야 하는데 자기 형편에 어떻게 그러냐며 스폰서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이를테면 선한 의미의 스폰서라는 말이다. 어쩌면 검사님들도 후배 검사들에게 술을 사주기 위해서 ‘선한 스폰서십’을 맺는지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결말이 그렇게 선하게만 맺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때 그 출판사의 책들이 유독 좋은 면을 배정받았다는 기억이 있는 것을 보면 스폰서십에는 대가가 따른다. 검사님들이 스폰서에게 어떤 대가를 지불했는지 감조차 잡히진 않지만 세상에 공짜가 없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런데 굳이 스폰서까지 대동해서 술을 살 필요가 있을까. 그건 후배들을 위하는 일이라기보다 선배의 ‘가오’를 세우고자 함이 아닐까. 그게 아니면 굳이 ‘좋은 데’를 가야 할 이유가 없을 텐데. 선배가 후배에게 진심으로 술을 사주고 싶다면 포장마차나 삼겹살집이 안될 이유가 뭐 있겠나. 나아가 검찰이라면 군기 잡기와도 관련있을 것이다. 부하들을 이열종대로 앉혀놓은 간부가 잔을 돌리며 일장 훈시를 하는 풍경은 눈에 선하다. 장난스럽게 말하면, 그런 고비용 저효율 방식으로 군기를 잡느니 차라리 ‘빳따’를 때리는 게 낫겠다(부산지검이라면 롯데가 패할 때마다 100대씩 추가해서 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일 거다). 아니면 <검사 프린세스>의 마혜리 같은 부류만 검사에 임용하든가. 그것도 아니라면 검사들의 술자리를 폐하라.
사실 이렇게 마감이 늦어지노라면 나 또한 군기 한번 잡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그러나 우리 기자들은 술도 즐기지 않고 ‘빳따’도 미끌미끌 피해갈 족속이다. 부디 어찌해야 하는지 처방을 주실 스폰서 어디 안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