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여행자> 요시다 슈이치 지음 노블마인 펴냄
도시민의 외로움을 요시다 슈이치는 늘 섬세하게 짚어낸다. 그에게 아쿠타가와상을 안긴 <파크 라이프> 때부터 그랬다. 국제적인 프랜차이즈 커피숍,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수단, 거절에의 두려움을 안고 손을 내밀었다 실망을 맛보게 만드는 미묘한 거리감. 일상일 뿐이기에 의미 부여를 하지 않고 살아왔던 도시의 편린들을 새로운 느낌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그의 <도시여행자>는 그가 십년에 걸쳐 써온 도시들에 관한 단편집이다. 당연하게도 도쿄를 포함해, 오사카와 상하이, 그리고 서울에 대한 이야기들이 실렸다. 서울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무심코 넘기던 서울의 일상이 새삼스러운 의미를 갖게 된다. 넥타이를 아무렇게나 비닐봉지에 넣어 건네는 동대문의 상인에서 젖은 손으로 음식 값을 받는 식당 아줌마까지. 서울과 도쿄를 가르는 미묘한 정서의 차이가 주는 재미. 무엇을 경험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일상의 도시가 여행지의 생경함으로 다가온다.<세상의 도시> 피터 윗필드 지음 황소자리 펴냄
계란 한판만 한 이 커다란 책은 인간의 문명이 생긴 이래 존재한 가장 유명한 도시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니까 테오티우아칸에서 첫 페이지가 할애된 건 놀랄 일이 아니다. 사라진 지 너무 오래 되어 실재했는지 그저 전설일 뿐인지 반신반의하게 만드는 그 오랜 고대의 도시 말이다. 쿠스코와 라사 이야기도 담겼다. 커다란 책 크기를 십분 활용해 그림과 사진 자료도 풍부하게 실려 있다. 지금까지 기능하는 맨해튼의 1661년 그림은 아프리카 같은 녹색으로 채색되었다. 20세기가 시작되던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는 인상적인 도시 구획과 도시를 나누는 센강의 굵은 곡선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도시의 선을 그려낸다. 꽤나 아름답고 근사한,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랄까.<저지대> 헤르타 뮐러 지음 문학동네 펴냄
피나 바우쉬의 무용을 보는 것 같다. 노벨 문학상 수상 덕분에 한국어로 읽을 기회를 얻게 된 헤르타 뮐러의 소설은 딱 그런 인상이다. 허공를 가르는 몸짓은 앙상한 몸과 대조되는 강렬함에 빛난다. 언어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본능적으로 포착하기 위한 안간힘을 쓰는 무대 위의 그녀와 그녀를 바라보는 관객. 헤르타 뮐러의 <저지대>에서는, 이미지와 움직임, 색깔, 소리, 맛은 있지만 목적성을 갖고 한 방향으로 또렷하게 흘러가는 서사를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게 다 무슨 말인가 싶은가? 그럴 것이다. 뭘 상상하고 읽어도, 상상하지 못한 풍경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서점에 서서 표제작 <저지대>만이라도 꼭 읽어보시라. 말이 만들어낸 이 아름다움을 말로 풀어 전하는 일의 불가능함에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