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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웃기기 위한 클리셰는 그만!

왜 한국영화는 툭하면 시골 사람들을 웃음거리로 만드나

<베스트셀러>

한국영화에서 주인공이 시골로 갈 때면 어김없이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를 넘어 외딴 도시로 차를 몰고 들어가기만 하면 차창 밖에 나타나는 사람들의 아이큐가 집단적으로 50 정도 낮아진다. 새 스릴러영화 <베스트셀러>에서도 그렇다. 엄정화가 연기한 주인공이 새 책 작업을 위해 외딴 오두막으로 집을 옮긴다. 그 동네 사람들은 모두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며 소리 지르고, 서로를 걷어차고, 선생님이 없는 유치원 아이들처럼 뛰어다닌다. 한국 여행을 좀 해봤지만 어디 가서도 이런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영화에서는 항상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물론 관객을 웃기려고 감독들이 이런 과장된 상황을 만드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웃음은 꽤 복잡한 것이어서 어떤 농담은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시골에 사는 사람 중에 느린 사람들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서울에도 그런 사람들은 많지 않은가?). 모든 사람들과 반대되는 개인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과 그 지역 모든 사람들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살인의 추억>에는 예리한 농담들이 많은데 그 농담들은 개인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웃으면서 동시에 씁쓸함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한국 코미디와 장르영화들에 나오는 많은 농담은 시골 사람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만약 조선족이나 다른 민족 사람들을 바보로 묘사해 농담한다면 농담을 통해 이 사람들을 어떻게 모욕하고 있는지 깨닫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시골 사람들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은 화가 나면 개를 차는 것처럼 웃기기 위한 클리셰라 할 수 있다. 보면서 웃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게 재미있다는 건 아니다.

이런 현상이 굳이 한국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중반 존 슐레진저의 <콜드 콤포트 팜>을 보는 내내 욕을 해댔던 기억이 있다. 영화는 런던에서 온 스무살의 세련된 플로라가 시골 마을에서 바보스럽고 정신적으로 좀 문제가 있는 친척들과 살면서 그들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준다는 이야기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플로라의 얼굴에 진흙을 처바르고 싶었다(아마도 영화의 아이러니가 내게는 전혀 와닿지 않았던 때문이리라).

나의 이런 관점에 솔직해져야 할 것 같다. 나는 인구가 800명 정도, 소가 1500마리 정도 살던 매사추세츠 서부의 작은 마을에서 자라났다(그 마을 사람들이 보통 하는 농담이란 소들이 투표권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농담 정도였다). 이런 내가 강원도의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 형제애를 느낀다고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어디에서 자라났든 이 윤리적인 관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내가 이런 문제에 유난히 민감하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이 영화적 관습을 끝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제 이 관습은 지겹다. 요새 상업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들에게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바보스럽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사악하게 그리는 것(혹은 이 세 가지 특성을 뒤섞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는 듯하다. 그래서 문화적이고 지적인 서울 사람이 옆에 서서 턱만 좀 치켜들어도 상대적으로 너무나 멋져 보이게 말이다. 제발 그만. 이제는 너무나 지겹다. 개는 그만 걷어차고, 진짜 재미를 만들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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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이서지연